최영미 시인(사진)이 4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실천문학)을 발표했다. 정치 풍자와 연애를 주된 테마로 하는 이번 시집에서 그는 남북한의 통치자들을 과감하게 비판하고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한 연애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왕관을 물려받은 새끼 돼지가/할아버지처럼 살찌는 약을 먹고 군부대를 시찰하는데/배고픈 염소들이 담을 넘어올까, 두려운/이웃 농장의 여우들이 식량지원을 약속하고//돼지가 죽은 줄도 몰랐던 남쪽 나라에서는/두더지들이 황급히 머리를 맞대고/돼지의 죽음이 우리에게/이로울까?/해로울까?’(‘돼지의 죽음’ 부분)

솔직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시인은 “전작 ‘도착하지 않은 삶’은 내가 낸 시집 중 유일하게 연애를 하지 않을 때 썼다”면서 “이번 시집의 작품들은 연애의 세계로 복귀해 쓴 시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옛날을 도려낸다/편지를 태우고/사진을 찢고/옛날 남자들을 지우고/그 남자 옆에 서 있던 젊은 날의 나도 지우고/(…)/남자에게 나를 이해시키려/오래된 얼굴들을 다시 불러온다.’(‘의식’ 부분)

그의 시는 직접적이고 냉소적이라고 평가받지만 시인은 이를 반박했다. 경험에서 나온 비유를 주로 쓰기 때문에 ‘상징’들이 보이지 않게 시 속에 녹아 있고, 그래서 직접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발표 후 항상 ‘386시인’으로 불려 온 데 대해서는 “386이니 후일담이니 하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많은 주제의 글을 써왔지만 1980년대에 관한 글은 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 시대의 의미를 아직 모르고 정리할 수도 없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최근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문예지 ‘문학의 오늘’ 여름호부터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성장소설을 연재하기로 한 것. 2005년 낸 첫 소설 ‘흉터와 무늬’에 이은 두 번째 소설이다.

“저의 20대를 소설화하는 셈이죠. 예전에 ‘우리 386세대의 명암과 1980년대의 아픔을 그려달라’며 독자가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어요. 거기에 대한 늦은 답장입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