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동성 결혼 합법화될까…'세기의 재판' 시작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를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DC 의회 의사당 건너편에 있는 연방대법원 앞. 26일(현지시간) 이곳에서 만난 개인사업자 댄 엔즈(58)는 “동성 커플이 아이를 입양해 키우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느냐”며 “동성 결혼은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 연방대법원은 이날 캘리포니아주의 동성 결혼 금지법안에 대한 위헌 심리를 시작했다. 이날 대법원 앞에서는 동성 결혼 지지자와 반대자들의 피켓 시위가 한창이었다. 때로는 말싸움도 벌어졌다. 성경을 든 한 남성이 “기독교의 나라 미국에서 동성 결혼이 허용되면 사회는 극도로 혼란해질 것”이라고 외치자 한 여성은 “동성애자들을 범죄 집단으로 몰아붙이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한 여학생은 “결혼은 사랑에 관한 것이지 법률적인 문제가 아니다”고 쓰인 피켓을 높이 들었다.

4년 전 캘리포니아주는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동성 결혼 지지자들이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 소송을 벌였다. 지방법원과 연방항소법원은 위헌판결을 내렸으며 대법원의 최종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

CBS가 이날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연방정부가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이성 결혼자들과 같은 복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데 60%가 찬성하고 35%는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재판은 찬반 토론과 비공개 심리 등을 거쳐 이르면 오는 6월께 판결이 내려진다.

위헌판결이 내려지면 미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 등 전 세계에도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현지 언론들이 ‘세기의 판결’이라며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은 “대법원이 아주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며 예단을 피해 갔다. 대법관 9명 가운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 5명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될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이날 “우리는 지금 미지의 길을 가고 있다”는 미묘한 발언을 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