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주식시장을 휘젓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0년 초 ‘정보기술(IT) 버블’은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엄청난 위기인 동시에 기회였다. 싼값에 주식을 쓸어담아 비싸게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00억원대 주식 부자’ 박영옥 씨는 “외환위기와 2001년 ‘9·11 테러’가 없었다면 수천만원의 종잣돈으로 지금의 부(富)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슈퍼개미의 원조격인 ‘압구정 미꾸라지’ 윤강로 씨, ‘목포 세발낙지’ 장기철 씨, ‘전주투신’ 박기원 씨 등도 이때 상당한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전공’은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이었지만 현물시장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슈퍼개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03년부터다. 그해 5월 개인투자자라고 밝힌 김영만 씨는 화장품 제조업체 코스맥스 지분 7.09%를 ‘경영 참여’ 목적으로 매입한 사실을 공시했다. 김씨는 지분을 계속 늘렸고 적대적 인수·합병(M&A) 기대감에 주가는 큰 폭으로 뛰었다. 김씨는 이듬해 코스맥스 지분율을 19.19%까지 끌어올린 뒤 차익을 남기고 팔았다.

이후 김씨와 비슷한 ‘경영참여형’ 슈퍼개미가 쏟아져 나왔다. 경대현·경규철 부자는 적대적 M&A를 시도하겠다며 서울식품공업 슈넬생명과학(옛 한국슈넬제약) 등의 지분을 사들인 뒤 주가가 급등하면 매각하는 방법으로 몇 달 만에 수십억원을 챙겼다. ‘먹튀’형 슈퍼개미는 이후 에프와이디 하우리 마담포라 대진공업 대상사료 남한제지 가로수닷컴 신화실업 등 여러 기업에서 등장했다. 슈퍼개미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이 강화되면서 먹튀형 슈퍼개미는 크게 줄어들었다.

빈자리는 장기 투자형 슈퍼개미가 채우기 시작했다. ‘주식농부’ 박영옥 씨, 현대약품 등 제약주에 주로 투자한 ‘제약 큰손’ 박성득 씨, 일성신약 소액주주 운동을 주도했던 표형식 씨 등은 특정 기업에 수백억원의 자금을 장기 투자하는 전략을 썼다. 김수일 씨는 이 무렵 AJS(옛 아세아조인트)의 경영권을 확보, 슈퍼개미가 적대적 M&A를 성공시킨 첫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

일부 슈퍼개미는 이즈음 ‘재야의 고수’에서 벗어나 제도권으로 들어왔다. 윤강로 씨와 김정환 씨는 2000년대 중후반 각각 KR선물과 밸류25라는 투자회사를 만들었다. 파생상품 시장의 큰손이던 ‘슈퍼메기’ 선경래 씨는 2008년 속옷업체 좋은사람들을 인수, 상장사 오너가 됐다.

2~3년 전부터는 ‘상생’형 슈퍼개미도 나오고 있다. 경영진 및 근로자와 힘을 합쳐 회사를 키운 뒤 성장의 과실을 나눠 갖자는 사람들이다. 쌍용머티리얼에 투자했다가 발생한 이익 일부를 사내복지기금으로 출연한 한세희 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