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동위원회, 서비스·투자위원회 열어 대응책 마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 1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풀어야 할 과제는 아직 남았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재협의와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원산지 인정 문제가 대표 사례다.

미국에서는 쇠고기 수입 확대 등 통상압력이 커질 조짐이 있다.

통상교섭본부는 국회에 계류 중인 정부조직개편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양국간 포괄적 협의기구인 공동위원회, 서비스·투자위원회 등을 잇달아 열어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ISD 재협의…부처 협의·결정만 남아
ISD 재협의는 2011년 11월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여야 전면충돌 양상을 띠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타협안이었다.

ISD는 투자유치국 정부가 FTA투자협정상 의무, 투자계약, 투자인가를 위배해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으면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 제소 또는 국제중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야당은 이를 '독소조항'으로 규정하고 폐기를 주장한 바 있다.

이후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 미국과 협의를 거쳐 ISD의 개정 또는 보완을 논의할 수 있는 서비스·투자위원회를 신설해 작년 6월 첫 회의를 했다.

개정 또는 보완방안에 대해서는 관계자 의견을 청취하고 작년 12월 '민관태스크포스(TF)'에서 최종보고서를 만들었다.

정부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관련부처와 논의해 재협상 여부를 정하고 국회 보고뒤 미국에 통보할 계획이다.

보고서는 'ISD가 국내 투자기업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통상교섭본부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내정자는 지난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준비가 되는대로 ISD 개선 내지 폐기에 관련한 재협의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문제가 가시화하지 않은 ISD를 놓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미국이 그 대가로 쇠고기 수입확대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큰 점도 부담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작년 12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재협상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필요하면 재협상을 반대하지 않지만 국제사회의 신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다.

◇개성공단 제품 역외가공 인정
한미 FTA는 한·EU FTA와 마찬가지로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개성공단 제품을 포함한 역외가공지역 생산 제품에 대한 원산지 인정문제를 협정 발효 후 논의할 수 있도록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설치토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열릴 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공식 제기하고 지역 범위, 품목 등 원산지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문제는 FTA 부속서에 나온 조건이다.

부속서에는 ▲한반도 비핵화 진전 ▲역외가공지역 지정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역외가공지역내 일반 환경기준, 근로기준·관행, 임금, 경영·관리 관행 등 기준을 설정하고 충족 여부를 결정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가이드라인대로라면 북한 핵 문제가 국제문제로 비화한 현 상황에서는 개성공단 제품의 역외가공 인정을 전혀 주장할 수 없다.

더욱이 미국은 2011년 4월 대북한 제재와 관련한 행정명령에서 북한 물자의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한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지금의 북핵 사태를 보면 개성공단 제품의 역외가공 인정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쇠고기 추가 개방 등 통상압력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한미 FTA가 미국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한 보고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ITC는 발효 후 한국과의 FTA가 생산, 분배, 중소기업 무역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를 분석·평가해 왔다.

조사 범위도 상품, 무역, 지적재산권 등 광범위하게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웬디 커틀러 USTR 대표보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조만간 우리나라를 상대로 쇠고기 시장개방 확대를 요구하는 협의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의회나 산업계, 시민단체 등에서 한미 FTA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커진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미국은 우선 현재 한국이 수입하지 않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교섭본부의 최경림 FTA교섭대표는 지난 1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고 돌아와 "(미국이) 당장 쇠고기 추가 개방을 협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추가 개방 문제를 거론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설명했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확대는 새 정부로서 부담스럽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월령 30개월 이상의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사실상 완전히 허용했다가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대국민 저항에 후퇴한 경험 때문이다.

일단 정부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소비자 신뢰회복이 안 된 점을 들어 수차례나 불가론을 펴왔다.

그러나 미국 측이 무역역조 등을 이유로 압박하면 얼마나 버틸지 의문이다.

쇠고기 추가개방이 어려우면 제조업 쪽으로의 통상압력을 틀 가능성도 우려된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최근 제조업에서 성장 활로를 뚫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며 "축산 분야보다는 제조업 쪽에서 통상 압력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유경수 기자 y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