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6일 참의원(상원)에서 “2030년대에 원전 비중을 제로로 하겠다는 기존의 정책을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안전하다고 확인된 원전부터 재가동하겠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전기요금 상승, 무역수지 적자 확대 등 원전 가동 중단에 따른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판단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가동 일정은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다. 원전을 불안하게 보는 여론을 의식해서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는 전체의 71%가 ‘원전을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터진 지 2년. 일본의 원전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빚더미 앉은 일본 전력회사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 1부 시장에 상장돼 있는 전력회사는 모두 10개. 이들 회사의 작년 말 기준 총 부채규모는 25조3000억엔(약 300조원)에 달한다. 상장법인(3월 결산법인) 전체 부채(184조엔)의 18% 수준이다. 동일본 대지진이 터진 뒤 2년 동안 10개 전력회사의 부채는 4조엔가량(약 48조원) 늘었다. 평균 자기자본비율(총자산 중 자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23%에서 16%로 악화됐다.

부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화력발전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와 석유 사용량 증가다. 가동 중단되는 원전이 잇따르면서 상대적으로 연료비가 비싼 화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탓이다. 작년 4~12월 전력 10개사의 연료비는 5조1000억엔으로 1년 전에 비해 1조2000억엔 늘었다. 전기요금 수입만으로는 감당이 어려워 은행 차입과 회사채 발행 등으로 구멍을 메우다 보니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버렸다.

앞날은 더욱 캄캄하다. 일본 전역에 있는 50개 원전 가운데 현재 가동 중인 것은 간사이전력의 오이 3ㆍ4호기 딱 두 개뿐이다. 이마저도 오는 9월이면 정기검사를 받느라 가동을 멈추게 된다. 작년 5월에 이어 두 번째 ‘원전 제로’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7월부터 원전에 새로운 안전기준이 적용되는 것도 부담이다. 높아진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10개 전력회사는 안전대책 비용으로 1조엔 가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원전 중단 부작용 일파만파

원전은 멈춰도 돈이 든다. 유지ㆍ관리에만 전력회사당 연간 수백억엔의 자금이 들어간다. 기회비용도 크다. 도쿄전력은 원전을 돌려서 한 해 800억엔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그만큼 고스란히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쌓아 두기만 했던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 문제도 골칫거리다. 일본은 1950년대 원전을 짓기 시작하면서 모든 사용후 핵연료를 플루토늄으로 바꿔 이를 다시 원전 원료로 사용하는 이른바 ‘핵연료 사이클 정책’을 도입했다. 현재 롯카쇼무라 저장고에 쌓여 있는 사용후 핵연료는 총 1만7000t. 몇 년 안에 한계에 도달한다. 원전을 영구적으로 포기할 경우 핵연료 사이클 정책도 물거품이 되고, 사용후 핵연료는 거대한 방사능 쓰레기로 남게 된다.

일본 국가 경제 전반에도 부담이 크다. 일본은 주요국 가운데 전기요금이 유독 높은 나라다. 미국의 두 배, 한국에 비해서는 세 배가량 요금이 비싸다. 원전 가동 중단 조치가 장기화하면 추가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도쿄전력을 포함해 6개 전력회사는 이미 10% 안팎의 전기요금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요미우리신문은 “6개 전력회사가 예정대로 전기요금을 올릴 경우 일본 전체 가정에는 연간 약 6000억엔, 기업에는 약 9600억엔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고 보도했다. 엔저(低)로 수입물가가 오르면 전기요금 인상 압력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일본 무역수지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 LNG 등을 포함하는 ‘광물성 연료’ 연간 수입액은 지진이 터지기 전인 2010년 17조3980억엔에서 작년엔 24조784억엔으로 40% 가까이 불어났다. 무역수지 적자 폭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확대된 주원인이다. 후카오 미쓰히로 와세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된 원자로마저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며 “원전은 국가 에너지전략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안전판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