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 안 하는 분야가 없고, 참견 안 하는 장르가 없다는 것이 광고하는 일의 재미이자 다른 한편으론 피곤함이기도 하다.

며칠 전부터는 일 때문에 여러 나라의 글을 채집하고 있는 바, 위대한 문인들의 유산을 읽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그런데 한 장 두 장 재미에 빠져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점점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어느새 일은 멀리 사라져 버리고, 장시간 딴짓만 하게 된 꼴이 되어 버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한번은 하이쿠(俳句·일본의 짧은 전통 시)들이 하도 좋아 한 줄 한 줄 맛을 음미하다 한나절을 날려버렸는데, 그중 하나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하이쿠는 짧아서 소개하기도 좋다. 바쇼라는 분의 작품인데 글은 이렇다.

‘오래된 연못/개구리 뛰어드는 소리/물소리 퐁당.’

고요하다. 함께 일하는 카피라이터의 말을 빌리자면 개구리 퐁당 소리가 오히려 그 고요함을 더 부추겨 절절하게 와 닿게 만든다고 한다. 가만히 곱씹다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나는 왠지 그 오래된 연못가에 내가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아니 그 연못가에 오래도록 앉아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우리 몸에 어떤 영양소가 부족하면 특정 음식을 먹고 싶듯이 우리의 정신도 충만과 균형에 대한 갈구가 있는 것 같다.

비교적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인 나의 정신생활에도 불균형의 징후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지난 몇 달 동안 몸과 마음에 못할 짓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고 일은 일로 잊는다는 해괴한 모토를 내건 채 여백의 시간을 내팽겨쳐 버린 지 꽤 오래됐으니 말이다.

갑자기 오래전 어느 평일 강화도 이름 없는 절간 마루에 하루 종일 앉아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별로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냥 그렇게 오랜 시간을 적막강산 속에 앉아 있었던 그날의 시간이 왜 이렇게 가끔 생각이 날까.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그날의 바람이 왜 이렇게 그리울까.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 것은 눈을 감아야 보인다고 했는데,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어느 철학자 말대로 우리 현대인에게 필요한 영양소는 ‘깊은 심심함’인 것 같다.

이현종 < HS애드 대표크리에이티브디렉터 jjongcd@hsa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