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뭇 결연하고 엄숙해 보였다.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는 표정과 눈빛이었다. ‘부정부패 없이,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앞으로 5년간 이 나라를 한번 잘 이끌어가 보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잘사는 나라, 행복해하는 나라, 부친이 세운 경제 기적에 견줄 만한 제2의 도약과 번영을 기필코 이뤄보겠다.’ 거기까지는 좋다.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 가득하니 거룩하고 갸륵한 공심(公心)이 틀림없다. 대통령은 공직의 최고봉이다. 따라서 공심도 5000만 국민 가운데 단연 으뜸이어야 할 것이다.

만일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래서 반드시 훌륭한 대통령이 되겠다, 역사에 길이 남는 지도자가 되겠다,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서 역대 그 어떤 남성 대통령보다 뛰어난 업적을 남기겠다고 작심하면 그때부터는 사심(私心)의 노예가 된다. 공직자에게 있어 사심은 욕심이다. 대통령이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공직사회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과욕과 무리수의 진창에 빠져들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이야말로 신임 공직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유혹의 늪이다.

앞에 예를 든 두 가지가 언뜻 다 같이 옳게 보여도 그렇지 않다. 후자는 잘못이다. 대통령 자신이 역사에 길이 남는 지도자가 되면 국민과 나라에도 좋은 일이 아닐까, 이렇게 마음먹는 순간 일은 여지없이 꼬여버린다.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아니라 ‘선사후공(先私後公)’이 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부모를 섬기다 보면 효자가 되는 것이지, 효자가 되려고 부모를 섬기는 게 아니지 않는가. 공직자는 누구보다 공사(公私) 개념이 명확해야 한다. 아무나 입만 열면 하는 말이지만 이게 안 되는 공직자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사퇴하지 않겠다는 공직 후보자들을 간혹 보게 된다. 이는 스스로가 부적격자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개인과 가족의 명예회복은 대표적인 사심이다.

공심은 나 개인의 문제 때문에 공석이 돼 헛돌게 될 기관과 그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을 국민을 먼저 걱정하고 이것부터 바로잡으려고 서두르는 마음이다. 전란 중에 이순신 장군은 회복할 명예가 없어서 옥고를 치르고 백의종군을 했던가. 대통령의 사심은 국민을 망치고 나라를 망친다. 훌륭한 대통령이란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임기를 마쳤을 때 국민의 입에서 나와야 할 소리다. 그게 무엇보다 값지고 빛나는 훈장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을 보자. 4대강 사업은 완공 후에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강 주변 정비로 관광 등 경제 효과가 커질 것이란 의견이 있는가 하면 강 바닥에 설치한 보(洑·물막이 둑)가 물 흐름을 막아 수질이 악화될 것이란 목소리도 여전하다. 사업 성패가 판가름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을 대통령 임기 안에 끝내려 서두르는 과정에서 갈등을 키운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공심보다 사심이 앞섰다는 얘기다. 논란거리가 됐던 이른바 ‘셀프 훈장’도 아쉬운 대목이다. 대통령이 되면 공과에 상관없이 훈장을 받아왔다고 하지만 그런 관행을 흔쾌히 수긍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민의 존경이 담기지 않은 훈장이라면 그건 기념패와 다를 게 없다.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부디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돼 달라. 가령 함께 일할 사람을 뽑을 때 국민 편에서, 국민들이 좋아할, 오로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할 사람을 뽑는 게 공심이라면 반대로 자신이 편한 사람, 자신에게 잘할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뽑는 게 사심이다. 사심으로 정치를 하면 갈수록 인기가 떨어질 것이요, 공심으로 일하면 국민들은 끝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끝까지 잊지 않으면 역사에 영원히 남는다. 현실은 몰라도 역사만은 국민 편이기 때문이다.

김정산 < 소설가 jsan101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