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동성결혼' 합법화 요구 물결 왜? 선거에 도움 되는데…오바마도 '지지' 선언으로 재선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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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따라잡기
종교 쇠퇴·미디어 확산 영향
애플·페이스북 등 일부 기업도…인재 확보차원에서 지지 촉구
2001년 네덜란드서 첫 합법화
美·英 등 서유럽, 정치권이 앞장…최근 중국에서도 허용 목소리
종교 쇠퇴·미디어 확산 영향
애플·페이스북 등 일부 기업도…인재 확보차원에서 지지 촉구
2001년 네덜란드서 첫 합법화
美·英 등 서유럽, 정치권이 앞장…최근 중국에서도 허용 목소리
중국 최고지도자인 국가주석을 뽑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1주일 앞둔 지난달 27일. 이전엔 중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사건’이 일어났다. 동성애자 부모 100명이 ‘동성결혼을 허용하라’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전인대 대표들에게 보낸 것.
이들은 “우리 자녀들은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어 너무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며 “이성애자 간의 결혼만 허용하는 중국의 법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적인 중국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동성결혼 관련 사회운동이 일어난 것은, 그것도 최고지도부를 직접 겨냥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 들어 동성결혼 합법화나 합법화 요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서유럽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서고 있다. 그 배경에는 약화된 종교, 미디어의 영향,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늘어나는 동성결혼 금지법 위헌 논란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의 법률적 문제를 검토 중인 가운데 미국 법무부가 캘리포니아주의 동성결혼 금지법은 위헌이라는 입장을 대법원에 지난달 28일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운동 때 동성결혼을 찬성한다고 밝힌 데 이은 후속 조치인 셈이다. 미국은 일리노이, 메인, 메릴랜드, 워싱턴 등 10개 주(州)가 동성결혼을 허용해 미국 전체 인구의 20%가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주에 살고 있지만 연방정부가 동성결혼 이슈를 직접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12일에는 프랑스 하원이 ‘동성결혼 및 동성커플의 입양 합법화’ 법안을 찬성 329, 반대 229표로 통과시켰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부터 이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해왔다. 앞서 지난달 4일 영국 하원도 찬성 400, 반대 175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가결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역시 동성결혼 합법화를 약속해왔다. 보수당 정권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추진하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19일 동성커플의 입양을 제한하는 현행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2001년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합법화한 동성결혼은 10여년 만에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노르웨이 스웨덴 포르투갈 아일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로 확산됐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도 동성결혼을 인정한다. 태국 의회는 최근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상정했다. 호주와 영국, 독일 등 20개국은 동거하는 동성커플에게 결혼한 부부와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는 ‘시빌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다. 러시아 정부는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의 공공활동을 제한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동성애를 찬성하는 퍼레이드에 참석하거나 유인물을 나눠주는 행위에는 벌금을 물리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이 부결됐다.
그러나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계속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번 영국 하원의 표결에서 보수당 소속 의원 303명 가운데 139명이 반대표를, 13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2004년 ‘시빌 파트너십’ 투표 때의 찬성표(20명)보다 6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종교 전문 조사기관인 퓨포럼에 따르면 2001년엔 미국인의 3분의 2가 동성결혼에 반대했지만, 지금은 48%가 찬성하고 반대는 43%에 그쳤다.
○동성애자는 무시할 수 없는 유권자들
동성결혼 찬성 움직임이 빨라진 이유 중 하나로는 종교의 쇠퇴가 꼽힌다. 리 바제트 미국 애머스트대 교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수가 빨리 줄어드는 나라에서 동성결혼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공화당을 지지하는 동성애자 단체 로그캐빈리퍼블리칸스의 그레고리 안젤로 대표는 “동성결혼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TV나 영화를 통해 동성애자의 삶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장면들이 많이 노출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젊은 세대는 어려서부터 동성애자 친구, 동료들을 많이 봐 왔다”며 “만약 어떤 정치인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자세를 보이면, 40세 이하의 사람들은 동성애자든 아니든 거부감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성애자 인재를 활용하기 위해 기업들도 동성결혼 찬성 운동을 적극 벌이고 있다. 애플, 페이스북 등은 동성결혼 합법화 확대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미국 대법원에 제출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치인들에게 ‘표’가 되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할 수 없을 때 동성애자들과 같은 소수그룹의 지지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던진 ‘승부수’가 대표적이다. 오바마는 2008년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땐 공식적으로 동성결혼 찬성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반면 재임을 노린 지난해 대선에서는 지지를 선언했고, 그와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했던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이겼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이후 세계적으로 동성결혼 합법화 움직임이 힘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미국에서는 존 헌츠먼 유타 주지사,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 전 뉴저지 주지사 등 야당인 공화당의 정치인 수십명이 동성결혼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로비단체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최근 그리스 국채에 투자해 큰 돈을 번 미국의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댄 로엡이 동성결혼 찬성 로비를 위해 공화당에 거액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의 주요 기부자 중 한 명인 폴 싱어 엘리엇캐피털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도 동성애 찬성론자다.
FT는 “점점 많은 보수 정치인들이 지금 동성애자 표를 확보하지 않으면 2050년엔 선거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