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대기업 총수·임원 개인별 연봉 공개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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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무위원회가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주요 임원들의 연봉을 공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일정액 이상을 받는 상장 대기업 총수 및 임원의 보수와 산정 기준을 사업보고서에 공시해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현행 법률은 기업들이 등기임원(사내이사 사외이사) 모두에게 지급하는 연봉 총액만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2002년과 2004년에도 정치권에서 이와 비슷한 법안을 도입하려다 보류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새누리당이 관련 내용을 공약에 넣었다가 막판에 뺐다.
정치권은 이 법안을 재추진하기로 한 이유를 기업 임원 연봉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임원들이 경영 성과와 관계없이 막대한 보수를 챙기는 것은 아닌지, 기업 지배주주가 자의적으로 판단해 보수를 더 지급하지 않는지 등을 들여다보려면 보수 공개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이 개별 임원 보수를 공개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상장사협의회 등 재계는 법안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해외 기업들은 임원 자신들이 참여하는 이사회에서 보수를 자의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공개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주주총회에서 보수 총액을 승인받는 등 충분한 통제장치가 마련돼 있어 불필요하다는 게 재계 논리다. 또 개별 임원 보수를 공개하면 부정적 여론에 밀려 임원 보수가 하향 평준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이번주 맞짱토론은 ‘기업 임원 연봉 공개’에 대해 이목희 민주통합당 의원과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맞붙었다.
찬성 주주 위한 책임경영 가속화…美·日 등 시행…지배구조 투명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최대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전 대선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당선 이후 인수위원회를 거치면서 경제민주화 약속은 희석돼 갔다. 며칠 전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었다.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식어버린 느낌이다.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에만 유리하게 돼 있는 현재의 경제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해 대기업 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려 하는 것도 기업 정보 공개 시스템을 고쳐서 대기업의 영향력에 합당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기업 지배구조를 건전하게 하기 위해서다.
총수의 이사회 장악력 제한…공정한 성과평가 체계 가능
현재 대기업 임원의 보수는 그 총액만을 공개하도록 돼 있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59조 제2항 및 동법 시행령 제168조 제1항에서는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 법인에 임원 보수 총액만을 사업보고서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또 상법 제388조 및 제415조 규정에 따라 임원의 보수는 정관에서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주주총회 결의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관례상 우리나라에서는 임원 보수의 총액 한도만을 주주총회에서 결의한 후 개별 이사들의 보수는 이사회에서 결정하고 있다. 결국 회사의 주인인 주주조차 어떤 임원이 보수를 얼마나 받고 있는지, 또 그 보수가 임원이 이룬 성과에 적합한지 알기 어렵다. 대기업 임원의 보수를 결정하는 것은 회사의 주인인 주주가 아닌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재벌 총수다. 결국 대기업 임원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재벌 총수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기업 임원의 개인별 보수를 공개하면 첫째 대기업 총수가 이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 재벌 총수가 자신의 보수를 대폭 올리거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특정 임원의 보수를 늘리거나 줄일 수 없게 된다. 임원 입장에서는 자신의 보수를 결정하는 주주를 위해 일하는 책임 경영이 가능해진다.
둘째 주주의 감시통제를 통해 유능한 임원의 선임과 성과에 따른 보상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총수에게 줄서기가 아닌, 성과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유능한 임원을 선별해서 선임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임원의 개인별 보수는 주주의 중요한 회사 경영 판단 자료이며, 투자자의 투자 판단 정보다. 정확하게 공개돼야만 기업에 대한 주주와 투자자의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다. 기업의 신뢰도가 향상돼야만 기업의 발전이 가능하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기업 임원의 개별 보수 공개는 당연한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상장회사의 최고경영자와 최고 연봉을 받는 3인의 집행임원 등 5명의 최근 3년 동안 보수 규모 등을 세부적인 설명과 함께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금융개혁법’을 제정하면서 연간 경영진 보상과 기업의 성과 관계를 추가로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회사법과 상장 규정에서 상장회사들이 사업보고서에 이사회 구성원인 임원의 5개 사업연도 동안 개별 보수 내역 및 보상 기준 등 보수 정책에 관한 사항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별도로 ‘이사 보수의 공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개별 이사에게 지급한 보수를 포함한 모든 경제적인 가치를 갖는 보상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우리와 유사한 기업 지배구조를 가진 일본의 변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2010년 2월 ‘기업 내용 등의 공개에 관한 내각부령’을 개정해 임원그룹의 보수를 항목별로 밝히고, 특히 1억엔 이상 보수를 받는 개별 임원의 보수액과 세부 내역을 공개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일본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기업 지배구조 분야에서 우리나라보다 낮은 평가를 받아온 일본이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와 CLSA(Credit Lionnais Securities Asia)가 공동으로 발간한 ‘CG Watch 2010’에서 지배구조 투명성 순위가 급상승한 반면 우리나라는 말레이시아나 중국보다 못한 바닥권으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이 2010년 법 개정을 통해 기업 임원의 보수를 공개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재계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이사회가 사전에 임원보수 한도에 대해 주주총회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하는 국가에서는 개별 임원 보수 공개는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주총회에서 임원보수 한도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의 일방적인 내용 제시와 이에 대한 주주의 동의를 구할 뿐이다. 개별 임원 보수 공개를 통해 주주의 권리를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
주주·투자자, 경영정보 유용…경제민주화 시대 활짝 열려
또 임원별 보수를 공개하면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와 충돌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도 임원들의 스톡옵션은 개인별로 공개되고 있다. 감사의 경우 현재 이사와 구분해 보수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데, 회사당 감사는 한 명에 불과해서 결국 감사의 보수가 개인별로 공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임원별 보수를 공개하면 직장 내 위화감이 생기고 노사 갈등이 일어나 결국 임원 보수가 하향 평준화돼 경영자의 의욕을 감퇴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현행법상으로도 임원의 평균 보수는 공개되고 있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임원과 직원 간의 보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해도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대기업 임원의 개별 보수 공개는 대기업에 새로운 규제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기업 경영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라는 것이다. 기업인이 존경받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도 대기업 임원들이 얼마만큼의 보수를 받고 있으며, 이뤄낸 성과에 합당한지를 평가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원 보수 공개로 기업 내부에서는 공정한 성과평가 체계를 구축할 수 있고, 주주와 투자자에게는 올바른 경영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화두인 상황에서 대기업이 솔선해 경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만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 영업비밀 공개 강요하는 것…주총서 보수총액 통제 가능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머지않아 상장사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 공개가 포함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해 결론을 낼 예정이다. 개별 임원 보수 공개가 법제화되면 일정액(약 5억원) 이상을 받는 상장사 임원 개개인의 보수와 산정 기준 및 방법을 사업보고서에 공시해야 한다. 현재는 해당 사업연도 ‘임원 모두에게 지급된 보수의 총액’을 사업보고서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등기임원들이 받는 스톡옵션 등도 포함된다.
미국 일본과 달리 전체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는 게 옳은 것일까. 모든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면 개인의 프라이버시(사생활)가 침해되는 것은 물론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고 노사 갈등을 키울 수 있다. 또 보수 책정은 기업의 경영 노하우이며 영업비밀인데 이를 공개하라는 것은 영업비밀을 공개하라고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부당하다.
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자는 쪽은 미국 일본 등 각국의 사례를 들면서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연봉 10만달러(약 11억원)를 넘는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연봉이 가장 많은 상위 3명만 공개토록 하고 있다. 일본은 1억엔(약 11억5000만원) 이상을 받는 임원 보수만 공개한다. 모든 등기임원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 것이다.
기업 보수책정은 경영 노하우…사생활 침해 가능성도 문제
미국 등은 한국과 달리 임원 보수를 주주총회가 아닌 임원들 자신이 구성원인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이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임원들이 스스로 결정한 자신들의 연봉이 근로자 평균 연봉보다 480배나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회사가 망해 사임하면서 엄청난 해고수당까지 챙겨 비난을 받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2009년 금융위기 때 은행 간부들은 이미 수억달러를 번 뒤 회사를 떠났고 주주와 채권자, 납세자, 주택 소유자, 근로자 등 나머지 사람들은 큰 고통을 받았다. 최근 수년간 미국 은행 경영진의 보수가 급격히 늘었지만 그들의 생산성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 임원에 비해 갑자기 높아졌다고 믿기는 어렵다.
스톡옵션에 따른 보상이 기본 연봉보다 더 높아지기도 했다. 경영 손실을 냈으면서도 자신의 몫은 충분히 챙긴 CEO들도 있었다. 존 맥 모건스탠리 회장은 2008년 회사에 손실을 끼치고도 170만달러를 챙겼다. 스탠리 오닐 전 메릴린치 회장도 2007년 10월 대규모 손실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1억6000만달러의 퇴직금을 받았다. 디즈니는 취임 1년여 만에 퇴임한 사장에게 1억4000만달러의 퇴직금을 지급했다. 켄 루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CEO는 재임 기간에 정부 구제금융을 지원받았지만 회사를 떠날 때 5300만달러의 연금과 주식을 포함해 7200만달러의 보상을 받았다.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HP) CEO도 주가 급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2100만달러의 퇴직금과 스톡옵션을 포함해 2000만달러의 보상금을 챙겼다.
이같은 인센티브 체계는 미국 경제를 왜곡시키고 사회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격노한 것도 단순히 임원의 보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회사가 망해 구제금융을 받는 기업 임원들이 과도한 인센티브를 챙겨갔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아래 미국에선 임원들이 스스로 결정한 보수에 대해 주주들도 할 말은 하자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래서 만들어진 법이 ‘Say on Pay(임원 보수에 대해 할 말은 하자)’이다. 2007년 ‘도드-프랭크의 월스트리트 개혁과 소비자 보호법’에 규정된 내용이다. 그러나 ‘Say on Pay’는 결의도 아니고 구속력도 없다. 임원들에게 단순히 권고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 임원의 개별 보수를 규제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은 미국처럼 이사회가 스스로 보수를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다. 한국에서 임원 보수는 주주총회에서 사전승인(상법 제388조)을 거치는 방식으로 통제받는다. 이미 주주총회에서 주주들로부터 승인받은 보수 한도 내에서 집행하는 것인데, 이것을 임원 개인별로 쪼개 공시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여러 가지 복잡한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특히 사외이사는 모두 등기이사인데 몇몇 대기업을 빼곤 이들의 보수는 매우 열악한 게 현실이다. 사외이사의 보수가 공개되면 창피해서 더 이상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인 곳이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수를 올리면 ‘한두 달에 한번 정도 회의에 참석하고 왜 그렇게 많은 보수를 받느냐’는 힐난이 나올 것이다. 지금도 사외이사의 거마비에 대해 눈총이 따가우니 말이다.
우리나라 먹튀 CEO 흔치 않아…임직원 간 ‘갈등의 골’만 깊어져
미국에서도 회사가 많은 수익을 내고 있을 때는 임원이 보수를 얼마나 받는지 문제삼지 않았다. 주주에게 고액의 배당을 받게 해주는 임원이 많은 보수를 가져간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920년대 경제공황으로 많은 기업이 도산한 뒤 거대기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전문경영인이 주주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보수 문제’가 불거졌다. 회사 경영이 악화하고 적자에 시달릴 때도 거액의 보수를 챙긴 뒤 사임하거나 해고되는 전문경영인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국내 상장사의 어떤 CEO가 회사를 파탄에 몰아넣고도 염치없이 고액의 보수를 받고 떠났던 적이 있는가. 임원 연봉 공개는 남의 월급봉투를 뒤져 봐야만 속이 시원하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마치 질투에 눈이 멀어 인민재판을 열자고 아우성치는 모습과 같다. 현재 공시하고 있는 임원보수 총액과 개인들의 평균 연봉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울러 보수 산정 기준 및 방법을 공시하라는 건 기업 영업비밀을 공개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임원의 담당업무에 따라 계산이 불가능한 부서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사의 윤리경영 부서장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담당 부서장의 보수는 어떤 근거로 산출해야 할까. 회사 돈을 많이 쓴 임원일수록 높은 점수를 주고 그 임원에게 보너스라도 주어야 한다는 것일까.
임원 개인별 보수 공개제도는 우리 현실에 맞지도 않고 갈등만 조장하는 제도다. 백해무익한 이런 논의는 중단해야 한다.
2002년과 2004년에도 정치권에서 이와 비슷한 법안을 도입하려다 보류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새누리당이 관련 내용을 공약에 넣었다가 막판에 뺐다.
정치권은 이 법안을 재추진하기로 한 이유를 기업 임원 연봉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임원들이 경영 성과와 관계없이 막대한 보수를 챙기는 것은 아닌지, 기업 지배주주가 자의적으로 판단해 보수를 더 지급하지 않는지 등을 들여다보려면 보수 공개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이 개별 임원 보수를 공개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상장사협의회 등 재계는 법안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해외 기업들은 임원 자신들이 참여하는 이사회에서 보수를 자의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공개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주주총회에서 보수 총액을 승인받는 등 충분한 통제장치가 마련돼 있어 불필요하다는 게 재계 논리다. 또 개별 임원 보수를 공개하면 부정적 여론에 밀려 임원 보수가 하향 평준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이번주 맞짱토론은 ‘기업 임원 연봉 공개’에 대해 이목희 민주통합당 의원과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맞붙었다.
찬성 주주 위한 책임경영 가속화…美·日 등 시행…지배구조 투명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최대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전 대선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당선 이후 인수위원회를 거치면서 경제민주화 약속은 희석돼 갔다. 며칠 전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었다.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식어버린 느낌이다.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에만 유리하게 돼 있는 현재의 경제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해 대기업 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려 하는 것도 기업 정보 공개 시스템을 고쳐서 대기업의 영향력에 합당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기업 지배구조를 건전하게 하기 위해서다.
총수의 이사회 장악력 제한…공정한 성과평가 체계 가능
현재 대기업 임원의 보수는 그 총액만을 공개하도록 돼 있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59조 제2항 및 동법 시행령 제168조 제1항에서는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 법인에 임원 보수 총액만을 사업보고서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또 상법 제388조 및 제415조 규정에 따라 임원의 보수는 정관에서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주주총회 결의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관례상 우리나라에서는 임원 보수의 총액 한도만을 주주총회에서 결의한 후 개별 이사들의 보수는 이사회에서 결정하고 있다. 결국 회사의 주인인 주주조차 어떤 임원이 보수를 얼마나 받고 있는지, 또 그 보수가 임원이 이룬 성과에 적합한지 알기 어렵다. 대기업 임원의 보수를 결정하는 것은 회사의 주인인 주주가 아닌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재벌 총수다. 결국 대기업 임원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재벌 총수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기업 임원의 개인별 보수를 공개하면 첫째 대기업 총수가 이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 재벌 총수가 자신의 보수를 대폭 올리거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특정 임원의 보수를 늘리거나 줄일 수 없게 된다. 임원 입장에서는 자신의 보수를 결정하는 주주를 위해 일하는 책임 경영이 가능해진다.
둘째 주주의 감시통제를 통해 유능한 임원의 선임과 성과에 따른 보상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총수에게 줄서기가 아닌, 성과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유능한 임원을 선별해서 선임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임원의 개인별 보수는 주주의 중요한 회사 경영 판단 자료이며, 투자자의 투자 판단 정보다. 정확하게 공개돼야만 기업에 대한 주주와 투자자의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다. 기업의 신뢰도가 향상돼야만 기업의 발전이 가능하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기업 임원의 개별 보수 공개는 당연한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상장회사의 최고경영자와 최고 연봉을 받는 3인의 집행임원 등 5명의 최근 3년 동안 보수 규모 등을 세부적인 설명과 함께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금융개혁법’을 제정하면서 연간 경영진 보상과 기업의 성과 관계를 추가로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회사법과 상장 규정에서 상장회사들이 사업보고서에 이사회 구성원인 임원의 5개 사업연도 동안 개별 보수 내역 및 보상 기준 등 보수 정책에 관한 사항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별도로 ‘이사 보수의 공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개별 이사에게 지급한 보수를 포함한 모든 경제적인 가치를 갖는 보상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우리와 유사한 기업 지배구조를 가진 일본의 변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2010년 2월 ‘기업 내용 등의 공개에 관한 내각부령’을 개정해 임원그룹의 보수를 항목별로 밝히고, 특히 1억엔 이상 보수를 받는 개별 임원의 보수액과 세부 내역을 공개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일본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기업 지배구조 분야에서 우리나라보다 낮은 평가를 받아온 일본이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와 CLSA(Credit Lionnais Securities Asia)가 공동으로 발간한 ‘CG Watch 2010’에서 지배구조 투명성 순위가 급상승한 반면 우리나라는 말레이시아나 중국보다 못한 바닥권으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이 2010년 법 개정을 통해 기업 임원의 보수를 공개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재계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이사회가 사전에 임원보수 한도에 대해 주주총회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하는 국가에서는 개별 임원 보수 공개는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주총회에서 임원보수 한도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의 일방적인 내용 제시와 이에 대한 주주의 동의를 구할 뿐이다. 개별 임원 보수 공개를 통해 주주의 권리를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
주주·투자자, 경영정보 유용…경제민주화 시대 활짝 열려
또 임원별 보수를 공개하면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와 충돌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도 임원들의 스톡옵션은 개인별로 공개되고 있다. 감사의 경우 현재 이사와 구분해 보수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데, 회사당 감사는 한 명에 불과해서 결국 감사의 보수가 개인별로 공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임원별 보수를 공개하면 직장 내 위화감이 생기고 노사 갈등이 일어나 결국 임원 보수가 하향 평준화돼 경영자의 의욕을 감퇴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현행법상으로도 임원의 평균 보수는 공개되고 있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임원과 직원 간의 보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해도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대기업 임원의 개별 보수 공개는 대기업에 새로운 규제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기업 경영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라는 것이다. 기업인이 존경받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도 대기업 임원들이 얼마만큼의 보수를 받고 있으며, 이뤄낸 성과에 합당한지를 평가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원 보수 공개로 기업 내부에서는 공정한 성과평가 체계를 구축할 수 있고, 주주와 투자자에게는 올바른 경영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화두인 상황에서 대기업이 솔선해 경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만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 영업비밀 공개 강요하는 것…주총서 보수총액 통제 가능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머지않아 상장사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 공개가 포함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해 결론을 낼 예정이다. 개별 임원 보수 공개가 법제화되면 일정액(약 5억원) 이상을 받는 상장사 임원 개개인의 보수와 산정 기준 및 방법을 사업보고서에 공시해야 한다. 현재는 해당 사업연도 ‘임원 모두에게 지급된 보수의 총액’을 사업보고서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등기임원들이 받는 스톡옵션 등도 포함된다.
미국 일본과 달리 전체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는 게 옳은 것일까. 모든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면 개인의 프라이버시(사생활)가 침해되는 것은 물론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고 노사 갈등을 키울 수 있다. 또 보수 책정은 기업의 경영 노하우이며 영업비밀인데 이를 공개하라는 것은 영업비밀을 공개하라고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부당하다.
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자는 쪽은 미국 일본 등 각국의 사례를 들면서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연봉 10만달러(약 11억원)를 넘는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연봉이 가장 많은 상위 3명만 공개토록 하고 있다. 일본은 1억엔(약 11억5000만원) 이상을 받는 임원 보수만 공개한다. 모든 등기임원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 것이다.
기업 보수책정은 경영 노하우…사생활 침해 가능성도 문제
미국 등은 한국과 달리 임원 보수를 주주총회가 아닌 임원들 자신이 구성원인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이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임원들이 스스로 결정한 자신들의 연봉이 근로자 평균 연봉보다 480배나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회사가 망해 사임하면서 엄청난 해고수당까지 챙겨 비난을 받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2009년 금융위기 때 은행 간부들은 이미 수억달러를 번 뒤 회사를 떠났고 주주와 채권자, 납세자, 주택 소유자, 근로자 등 나머지 사람들은 큰 고통을 받았다. 최근 수년간 미국 은행 경영진의 보수가 급격히 늘었지만 그들의 생산성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 임원에 비해 갑자기 높아졌다고 믿기는 어렵다.
스톡옵션에 따른 보상이 기본 연봉보다 더 높아지기도 했다. 경영 손실을 냈으면서도 자신의 몫은 충분히 챙긴 CEO들도 있었다. 존 맥 모건스탠리 회장은 2008년 회사에 손실을 끼치고도 170만달러를 챙겼다. 스탠리 오닐 전 메릴린치 회장도 2007년 10월 대규모 손실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1억6000만달러의 퇴직금을 받았다. 디즈니는 취임 1년여 만에 퇴임한 사장에게 1억4000만달러의 퇴직금을 지급했다. 켄 루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CEO는 재임 기간에 정부 구제금융을 지원받았지만 회사를 떠날 때 5300만달러의 연금과 주식을 포함해 7200만달러의 보상을 받았다.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HP) CEO도 주가 급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2100만달러의 퇴직금과 스톡옵션을 포함해 2000만달러의 보상금을 챙겼다.
이같은 인센티브 체계는 미국 경제를 왜곡시키고 사회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격노한 것도 단순히 임원의 보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회사가 망해 구제금융을 받는 기업 임원들이 과도한 인센티브를 챙겨갔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아래 미국에선 임원들이 스스로 결정한 보수에 대해 주주들도 할 말은 하자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래서 만들어진 법이 ‘Say on Pay(임원 보수에 대해 할 말은 하자)’이다. 2007년 ‘도드-프랭크의 월스트리트 개혁과 소비자 보호법’에 규정된 내용이다. 그러나 ‘Say on Pay’는 결의도 아니고 구속력도 없다. 임원들에게 단순히 권고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 임원의 개별 보수를 규제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은 미국처럼 이사회가 스스로 보수를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다. 한국에서 임원 보수는 주주총회에서 사전승인(상법 제388조)을 거치는 방식으로 통제받는다. 이미 주주총회에서 주주들로부터 승인받은 보수 한도 내에서 집행하는 것인데, 이것을 임원 개인별로 쪼개 공시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여러 가지 복잡한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특히 사외이사는 모두 등기이사인데 몇몇 대기업을 빼곤 이들의 보수는 매우 열악한 게 현실이다. 사외이사의 보수가 공개되면 창피해서 더 이상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인 곳이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수를 올리면 ‘한두 달에 한번 정도 회의에 참석하고 왜 그렇게 많은 보수를 받느냐’는 힐난이 나올 것이다. 지금도 사외이사의 거마비에 대해 눈총이 따가우니 말이다.
우리나라 먹튀 CEO 흔치 않아…임직원 간 ‘갈등의 골’만 깊어져
미국에서도 회사가 많은 수익을 내고 있을 때는 임원이 보수를 얼마나 받는지 문제삼지 않았다. 주주에게 고액의 배당을 받게 해주는 임원이 많은 보수를 가져간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920년대 경제공황으로 많은 기업이 도산한 뒤 거대기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전문경영인이 주주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보수 문제’가 불거졌다. 회사 경영이 악화하고 적자에 시달릴 때도 거액의 보수를 챙긴 뒤 사임하거나 해고되는 전문경영인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국내 상장사의 어떤 CEO가 회사를 파탄에 몰아넣고도 염치없이 고액의 보수를 받고 떠났던 적이 있는가. 임원 연봉 공개는 남의 월급봉투를 뒤져 봐야만 속이 시원하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마치 질투에 눈이 멀어 인민재판을 열자고 아우성치는 모습과 같다. 현재 공시하고 있는 임원보수 총액과 개인들의 평균 연봉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울러 보수 산정 기준 및 방법을 공시하라는 건 기업 영업비밀을 공개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임원의 담당업무에 따라 계산이 불가능한 부서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사의 윤리경영 부서장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담당 부서장의 보수는 어떤 근거로 산출해야 할까. 회사 돈을 많이 쓴 임원일수록 높은 점수를 주고 그 임원에게 보너스라도 주어야 한다는 것일까.
임원 개인별 보수 공개제도는 우리 현실에 맞지도 않고 갈등만 조장하는 제도다. 백해무익한 이런 논의는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