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잠자는 대통령’으로 불렸다. 회의 도중 졸다가 구설수에 오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재임 동안 하루 평균 11시간을 잤다는 얘기가 돌았을 정도다. 병적으로 잠이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대공황을 앞둔 1920년대 중후반 시장이 한창 거품 낀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기에 걱정이 적어서였을까.

하지만 대다수 대통령은 엄청난 긴장감으로 불면에 시달렸다. “새벽 3시40분 침실로 돌아와 몸을 눕혔다. 5시 자명종이 울릴 때까지 내 어깨는 잔뜩 긴장하고 마음은 천 리 밖을 헤맨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다….” 41대 조지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으로 정신적 압박을 받아서였는지 갑자기 기력이 쇠해졌다. 1주일에 서너 차례씩 조깅을 하며 체력을 다져왔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정치학자 로버트 길버트는 ‘모털 프레지던시(The Mortal Presidency)’란 책에서 늘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대통령직은 ‘살인적인 자리’라고 썼다. 듀크대 메디컬센터는 역대 미 대통령 중 절반가량이 재임 때 수면장애와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렸다는 연구보고서를 냈다.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같은 냉전시대 소련 정상들도 하나같이 신경장애 증세를 보여 스테로이드 약물과 신경안정제에 의존했다고 한다.

분초 단위로 진행되는 공식일정이 끝나고 비서진이 빠져나간 후 경내엔 적막이 밀려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연말 “상도동 살 땐 주민들과 조깅도 하고 대화도 나눴지만 이제 그런 이웃이 없다”면서 “밤이 되면 쓸쓸하다 못해 고독하다”고 했다. 임기 한 해를 남기고는 “청와대가 감옥입디다. 모두 퇴근하고 집사람하고 둘만 남으면 적막강산도 그런 적막강산이 없어요”라고 털어놨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막상 청와대에 들어와 보니 쓸쓸하다”면서 “안사람과 두 번쯤 드라이브를 나갔는데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취임했다. 압박감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북핵문제에서부터 복지재원 확보, 가계빚 줄이기, 한·일관계 개선까지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없다. 당장 인사청문회에서 나올 잡음을 처리하고 빈사상태에 빠진 정치를 복원하는 것부터 그렇다.

대통령이란 집무실에 들어서면서 5년 뒤 떠날 때를 생각해야 하는 자리다. 너무 잘해 보려고 만기친람(萬機親覽)식으로 달려들다간 자칫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각계각층에서 온갖 요구가 분출하는 터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도 있을 수 없다. 일시적 지지율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후대에 두고두고 그리워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