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떠나는 김황식 총리의 마지막 고언…"고위공직자 되려면 집 한 채 외엔 욕심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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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은 하늘이 부여해 준 것 이라는 사명감 가져야
한국의 성공, 지금 성적 좋다고 여유부릴 상황은 아냐
재정건전성 유지 노력에 차기 정부 성패 달려
고령화·통일도 대비해야
한국의 성공, 지금 성적 좋다고 여유부릴 상황은 아냐
재정건전성 유지 노력에 차기 정부 성패 달려
고령화·통일도 대비해야
김황식 국무총리는 퇴임을 불과 며칠 앞두고도 여전히 바빴다. 지난 20일에는 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았다. 그는 “며칠 후면 물러나는데 그전에 꼭 한 번 가봐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마음의 빚이라도 진 것처럼 담담히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로 지명된 정홍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지만 임기를 마무리하느라 살펴볼 겨를이 없어 보였다.
김 총리는 정 후보자가 오는 26일 국회 임명 동의를 받으면 41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일반인으로 돌아간다. 김 총리를 20일과 21일 서울 광화문청사와 세종청사에서 두 차례 만났다.
▷법조인 출신으로 대법관, 감사원장에 국무총리까지 지냈습니다. 공직이란 무엇입니까.
“공직은 여느 직업과는 다릅니다. 하늘이 부여해준 것이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천직(天職)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영어로도 ‘콜링(calling)’, 독일어로는 ‘베루프(beruf)’라고 합니다. 모두 부름을 받았다는 같은 뜻입니다. 공직자는 자신의 일상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염두에 두고 자세를 낮춰야 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사회 통합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있는 자가 솔선수범하면서 약자를 배려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그 점이 미흡합니다.”
▷고위 공직자의 처신은 어떠해야 합니까.
“개인적으로 중견 법관이 되면서 부동산은 집 외에는 가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식도 마찬가집니다. 주식을 갖고 있는 회사가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투자를 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원칙은 인사청문회 제도가 생기기 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새로 출발하는 공직자나 앞으로 고위직을 맡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면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김 총리는 집 외에 갖고 있는 부동산은 선친이 종중으로부터 지분으로 물려받은 전남 장성의 문중 땅이 전부라고 말했다. 30년 전 수자원공사가 경기도 안산에서 택지개발을 했다가 미분양이 나자 당시 공무원들에게 권고해 취득한 적이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리했다고 했다.)
▷최근 한 특강에서 ‘우리가 이룬 눈부신 성취의 이면에 감춰진 그림자’를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성공이 계속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8%를 수입하고 식량자급률은 30%가 안 됩니다. 매일 20만~30만t의 대형 유조선이 3척씩 들어와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잘 관리되지 않으면 큰 재앙이 올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국가신용등급도 오르고 경제도 다른 국가에 비해 안정적인 것 아닙니까.
“지금 성적이 좋다고 자만하고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닙니다. 한국은 세계 경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입니다. 자동차 휴대폰 선박 등 수출 상위 10개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습니다.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국가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받습니다.”
▷국민들이 상황의 긴박함을 잘 모르고 있다고 보십니까.
“안보, 에너지, 경제 이 모든 것이 잘 관리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유조선이 드나드는 남방항로 통행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생깁니다. 안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호랑이 등에 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전국 곳곳의 사회복지시설을 많이 다녔는데 무엇을 느꼈나요.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얼마나 급속도로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현재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590만명인데, 2040년에는 1650만명으로 늘어납니다. 전체 인구의 32%가 넘습니다. 국가를 잘 운영하지 않으면 빚더미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재정건전성 유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죠.
“나라살림도 가정살림과 같습니다. 씀씀이가 커지려면 수입을 늘리든지 빚을 내야 합니다. 나랏빚을 함부로 늘리면 국가의 재앙이 됩니다. 남유럽의 그리스, 스페인이 어려움을 겪는 것도 우선 편하고 좋게 살자고 빚을 끌어서 나라살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태는 막아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양호한 수준 아닌가요.
“국가채무가 445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4%입니다. 일본은 200%가 훨씬 넘고 독일도 70~80%가 될 겁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고령화로 인해 복지 수요가 커지고 있습니다. 통일비용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과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문제 같습니다.
“무상복지, 선심정책 등 무책임한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몇 년간 복지문제가 이슈로 부각되면서 선택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에 대해 국민들의 인식도 많이 높아졌습니다.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복지정책을 선동적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됩니다.”
▷차기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위스나 독일처럼 강력한 재정준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스위스는 재정적자와 채무한도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재임기간 중 이루지 못한 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양극화 해소와 사회 통합입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비용이 GDP의 27%, 300조원 가까이 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방법이 있습니까.
“법과 원칙입니다. 법치와 정치가 뒤섞이면 안 됩니다. 사회적 약자는 국가가 복지제도를 통해 지원해야 하지만 법 집행은 엄정해야 합니다.”
▷법적 판단과 정무적 판단이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합니까.
“정무적 판단은 정략적 판단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두 가지 합법적인 방법이 있는데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는 정무적 판단입니다. 파급효과와 부작용을 고려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 가지 방법밖에 없을 경우 정무적 판단으로 이를 뒤집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비둘기같이 순결하되 뱀같이 지혜로워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공직자의 일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평소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을 강조하셨습니다.
“세종대왕은 조세정책을 만들 때 전국에서 백성 17만명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당시 인구가 600만명입니다. 현장을 다녀보면 법과 규정의 테두리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공직자는 경청과 소통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법이 이러니 억울하지만 방법이 없다고 하지 말고 어떻게 하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2010년 10월1일 취임했으니까 총리로만 2년5개월입니다. 장수하신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 헌법하에서 총리의 위치와 역할이 애매합니다. 총리는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일하면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총리로서의 역할에 만족하십니까. 밖에서는 명(名)총리라고 합니다.
“과대평가입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낙제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걸로 만족합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정부에 대한 평가는 상황과 시기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공도 있고 과도 있습니다. 공은 감춰지고 과가 부각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과가 없는 것은 아니니 지금의 저평가는 감내해야 하지만 장래에 공정한 평가가 이뤄진다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퇴임 후 계획이 있습니까.
“자연인으로 돌아갑니다. 여유를 갖고 공직생활을 돌아보면서 나라와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까 합니다.”
대담=이재창 정치부장
정리=이심기/조수영 기자 sglee@hankyung.com
사진=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 김황식 총리는…
민생현장 누비며 조용한 소통…국민-정부 잇는 롤모델 평가
2010년 세종시 수정안 파문으로 사퇴한 정운찬 전 총리에 이어 김태호 후보자까지 낙마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당시 김황식 감사원장을 41대 총리로 발탁했다.
같은 해 10월1일 취임한 이후 2년5개월간 총리직을 맡아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긴 재임기간을 기록한 총리로 남게 됐다. 광주·전남지역 출신으로는 최초의 총리이기도 하다.
임명 당시 의전총리, 대독총리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탁월한 국정 운영과 겸손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여론을 바꾸면서 국민의 신망을 얻는 데 성공했다. 취임 당시 “소나기가 아니라 소리 없이 내리지만 대지에 스며들어 새싹을 피우고 꽃을 피우는 이슬비 같은 총리가 되겠다”는 약속대로 민생 현장을 누비며 조용한 소통을 이어갔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제주 해군기지 이전 등 지역 간 이해 관계가 얽힌 문제를 조정하고 불법 사금융 척결,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마련을 주도하기도 했다.
2011년 연평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에서 경호원의 우산을 뿌리치고 40분간 장대비를 맞으며 젊은 병사들의 희생을 추모한 모습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의전팀을 거느리지 않고 순직 소방관을 조문해 어린 아들을 위로하는 등 대통령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총리가 보완하며 국민과 정부를 잇는 롤모델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48년 전남 장성 출생 △광주제일고·서울 법대 △사법시험 14회 △서울지방법원 판사·대법원 재판연구관·서울고법 부장판사·광주지방법원장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