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자판에도 이름이 있다. ‘쿼티(qwerty).’ 제일 윗줄 자판의 알파벳을 순서대로 읽은 것이다. 이름에 별다른 의미는 없지만, 자판이 이렇게 놓이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타자기는 크리스토퍼 숄즈라는 사람이 운영한 회사의 제품이었다. 요즘은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해서 문서 작업을 하다 보니 타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겠다. 타자기는 자판과 연결된 가느다란 쇠막대의 끝에 활자가 붙어있는 구조로 돼 있다. 글자판을 누르면 해당 알파벳 활자와 연결돼 있는 얇은 쇠막대가 야구방망이 돌아가듯 움직여 그 회전력으로 활자를 종이에 찍는 방식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던가. 숄즈의 경우에도 제품이 잘 팔리는 만큼 AS 요구가 많아졌다. 가장 많은 고장은 자판과 활자를 이어주는 쇠막대가 자꾸 휘어진다는 것. 원인을 조사해 보니 사용자들이 글자를 치는 속도가 너무 빠른 게 문제였다. 활자와 연결돼 있는 쇠막대가 종이를 때린 뒤 제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다른 글자를 누른다. 그 와중에 쇠막대끼리 서로 엉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누구는 쇠막대를 더 가늘게 만들어서 엉킴을 막아보자고 했고, 자판과 종이 사이 간격을 좁혀 쇠막대를 짧게 만들면 된다는 해법도 있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선택된 해결책은 어이 없는 방법이었다. 사람들의 타이핑 속도가 너무 빨라 쇠막대가 꼬이는 것이니, 자판을 어렵게 만들어 글자를 빨리 치지 못하게 하는 거였다. 그래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알파벳 E, I, A, T, N 등의 위치를 키보드의 가장자리로 옮겼다. 넷째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많이 쓰게 배치한 것이다. 넷째와 새끼손가락은 다른 손가락에 비해 사용이 불편하다. 이 황당한 아이디어가 채택된 이유는 자판의 배치만 바꾸는 데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이제 사람들은 컴퓨터를 사용한다. 쇠막대가 꼬일 걱정도 하지 않는다. 불편한 자판을 참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워싱턴대의 드보락 교수가 자신의 이름을 딴 자판을 개발했다. 많이 쓰는 알파벳을 가운데로 모았다. 손가락 이동을 줄여 타이핑 속도도 빨라졌다. 드보락 자판이 편리하다는 점에는 별로 이견이 없다. 하지만 출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대부분은 별 군말 없이 쿼티 자판을 사용하고 있다.

분명히 더 우월한 제품이 새로 나왔다고 해도 사람들은 쓰던 제품을 계속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행동경제학을 어설프게 배운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리 비합리적인 의사결정만도 아니다. 익숙한 제품을 떠나 새로운 제품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원가 비용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종류의 비용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전환비용(switching cost)’이라고 한다. 드보락 자판의 경우라면 새로운 자판을 익히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이 전환비용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전환비용을 감수하더라도 확실한 효용 증가가 있다고 느껴야만 비로소 새로운 제품으로 넘어오게 된다. 기업으로서는 전환비용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고객을 경쟁사에 쉽게 빼앗기지 않고 오랜 기간 충성고객으로 묶어둘 수 있다.

전환비용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신용카드를 해지하는 게 새로 발급받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전화에 대고 카드를 그만 쓰겠다는 말을 하면, 이 부서 저 부서로 하도 돌려대는 통에 ‘차라리 그냥 쓰고 말아야지’ 하면서 끊어버린 적도 있다. 복잡한 절차가 전환비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방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보험을 해약하겠다고 마음 먹었다가도 가입을 권유한 지인과의 관계가 불편해질까 걱정스러워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전환비용이 될 수 있다. 해외로 여행을 하는 경우 저렴한 항공회사를 이용할 수 있음에도 전에 이용하던 항공사를 선택한다. 알량한 포인트를 좀 더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말이다. 이 경우 항공사가 제공하는 포인트는 고객의 코를 꿰는 전환비용 역할을 한다.

이처럼 전환비용을 통해서 고객이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두는 것을 열쇠로 가두는 것에 비유해서 ‘록인(lock-in)’이라고 한다. 경쟁사끼리 고객을 빼앗아와야만 살아남는 성숙기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면, 고객을 지켜내기 위해 전환비용 전략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우창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