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케 히데오 교토대 교수는 ‘일본형 포퓰리즘’이라는 저서에서 “포퓰리즘은 적을 향해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극장형 정치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정치를 드라마나 영화처럼 포장하는 기술이라는 지적이다. 꿈을 팔기에 중독성도 강하다. 포퓰리즘에 속지 않으려면 일단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대표적 포퓰리스트로 불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행적을 통해 포퓰리즘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①‘적’과 ‘아군’의 이분법

포퓰리즘은 정치를 선과 악의 대립구조로 몰고 간다. 이기완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포퓰리즘에서 정치는 이해 대립을 조정하는 장(場)이 아니라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도덕주의적 관점에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고이즈미는 관료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정부 관료들이 일본의 정치·경제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반사적으로 고이즈미는 사악한 관료들에 둘러싸인 채 고군분투하는 ‘고립된 투사’의 이미지를 얻었다. 한국의 포퓰리즘도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국민을 ‘2% 대 98%’로 가른다거나, 산업정책을 시행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대립항을 만드는 것 등이 그렇다.

②정치 쟁점의 단순화

포퓰리즘은 복잡한 정치 쟁점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본질을 왜곡한다. 일반 국민의 귀에 쏙 들어가는 구호를 통해 유권자의 투표 행태에 영향을 미친다. 고이즈미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타개책을 ‘우정(郵政) 민영화’라는 구호로 압축했다. 쟁점의 단순화는 ‘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효과도 얻는다. 우정개혁법안에 찬성하면 ‘개혁파’, 반대하면 ‘기득권층’이라는 딱지가 붙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들에게도 익숙한 전술이다. 대학 개혁이라는 복잡다단한 문제는 ‘반값 등록금’으로, 저소득층 자녀의 복지대책은 ‘무상급식’ 등으로 치환됐다.

③국민과의 직접 소통

포퓰리즘은 정당정치의 틀을 깬다. 각계 각층의 의견을 정당이라는 창구로 취합해 결정하는 기존 정치구조를 뛰어넘어 곧바로 국민의 가슴에 호소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고이즈미는 TV와 라디오를 애용했다. 거의 매일 TV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했다.

‘고이즈미와 일본’이라는 책을 쓴 평론가 후지와라 하지메는 “일본 국민은 TV에 비친 고이즈미의 개혁적인 모습에 정신이 팔려 그가 재임하는 동안 경제가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