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동티 없는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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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에 밝은 빛 쏟아지는 설날
한 상에 모여 뜨거운 떡국 먹고 꽃다발 받아 마땅한 날 이어지길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
한 상에 모여 뜨거운 떡국 먹고 꽃다발 받아 마땅한 날 이어지길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
어둠을 뚫고 붉은 해가 솟는다. 독도에서 소흑산도까지, 한라에서 백두까지 온누리에 밝은 빛이 쏟아진다. 청솔 아래 응달엔 잔설, 청청한 하늘엔 수리 한 마리 떴다. 추운 아침이건만, 내일은 설날이다!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 설날은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왜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렇게 설레었던가? 설빔을 차려 입고, 어른들께 세배하고 세뱃돈을 받았다. 진한 사골 국물로 끓인 떡국 한 그릇, 갖가지 전들, 진수성찬을 받았다. 흩어져 살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만나서 반갑고 모여서 행복했다. 세상의 모든 늠름한 장남들아, 눈썹이 새까만 살가운 막내들아, 다들 고향에 내려오너라. 앞강 물은 여전히 맑고 뒷산 굽은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설날 아침 한 상에 모여 뜨거운 김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나눠 먹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첫날, 고향에서 설빔 차림으로 조상님께 차례를 지낸 뒤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며 세찬(歲饌)을 받자. 어른들은 세주(歲酒)를 마시고, 아이들에겐 약과를 주고 수정과를 마시게 하자. 설은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다. 한 해의 시작이다. 예전에는 설 전 골목마다 복조리 장수들의 복조리 사라는 외침이 메아리쳤는데, 그 많던 복조리 장수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복조리를 벽에 걸어 집안에 복이 들어오기를 바란 이 풍속의 소박함을 누가 어리석은 미신이라고 나무랄 수 있을까? 오늘의 안녕과 즐거움이 지난날들의 고난과 불편들에 대한 보상인지를 알겠다. 그래서 한자리에 무탈한 몸으로 무릎을 맞댄 자식들이 고맙고, 여전히 눈빛 형형하고 허리 꼿꼿한 부모님이 고향을 지키고 있어 든든했다.
너도나도 거저 나이를 먹은 게 아니다. 빗방울이 돌을 뚫고, 작은 씨앗들이 무성한 꽃을 피웠다면, 우리 역시나 고난한 날들을 이겨 기어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기 위하여 저곳에서 얼마나 많은 공허의 날들을 견뎠는지! 야속하다, 세월아. 어느덧 나이 들어 예비군 훈련에서도 열외로구나. 그렇다고 한물간 사람 취급하는 건 내 시퍼런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보라, ‘한 줄기 햇살은 암흑에 대한 보상이고,/한 방울의 이슬은 기나긴 가뭄의 대가이거늘!’(심 보르스카) 누이야, 너는 사는 게 힘들어 네 마음이 푸른얼음 속 물고기 같구나. 울지 마라, 누이야.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자. 우리 오남매는 어머니가 한 솥에 끓인 뭇국을 이마 맞대고 먹고 자라난 사이가 아니더냐. 우리는 항상 우리가 만드는 인생극장의 주인공들이었지. 우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바꾸고자 일하고, 아파트 사느라 빌린 은행융자 조금씩 까나가며 열심히 사랑했다. 무위도식하며 가장 게으르게 살아온 자들조차 삼백육십오일을 하루도 빼지 않고 열심히 숨을 쉬며 살아 냈으니,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는 꽃다발을 받아 마땅하다.
아우야, 너는 화덕에 불 피우고, 나는 놋그릇들을 반짝반짝 빛이 나게 닦으마. 제수씨는 명태전 대구전을 부치고, 형수님은 서해 조기를 굽고 남해 문어를 삶아라. 상에는 영주 사과 진영 단감 나주 배를 올리고, 안성 추청미를 깨끗이 씻어 지은 고봉밥을 올리고, 기장 햇미역으로 끓인 미역국도 올려라. 먹고 마시자. 아랫목에는 작년 섣달그믐에 태어난 갓난쟁이 어린 조카가 숨소리 여릿여릿 잠자고, 대청마루에는 뜀박질하는 어린 조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울린다. 서리 내린 듯 머리가 센 아버지가 마당에 멍석을 까신다. 아우야 멍석 위에 윷놀이판을 깔고, 누이들아 너희들은 그 곁에서 널뛰기를 하자. 쌀독이 비어도, 샘물이 얼어도 설날은 온다.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하자.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서정주, ‘꽃밭의 독백’) 삼재(三災)야, 물렀거라! 어둠 속의 야광귀(夜光鬼)들아, 사라져라! 나는 자꾸 쓸개 빠진 놈처럼 실실 웃음이 나온다. 벼락과 해일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일지라도, 오라, 길이여, 그 길을 가마! 꽃아꽃아, 문 열어라. 문밖은 우리 세상, 동티 없는 나날들이구나.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 설날은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왜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렇게 설레었던가? 설빔을 차려 입고, 어른들께 세배하고 세뱃돈을 받았다. 진한 사골 국물로 끓인 떡국 한 그릇, 갖가지 전들, 진수성찬을 받았다. 흩어져 살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만나서 반갑고 모여서 행복했다. 세상의 모든 늠름한 장남들아, 눈썹이 새까만 살가운 막내들아, 다들 고향에 내려오너라. 앞강 물은 여전히 맑고 뒷산 굽은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설날 아침 한 상에 모여 뜨거운 김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나눠 먹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첫날, 고향에서 설빔 차림으로 조상님께 차례를 지낸 뒤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며 세찬(歲饌)을 받자. 어른들은 세주(歲酒)를 마시고, 아이들에겐 약과를 주고 수정과를 마시게 하자. 설은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다. 한 해의 시작이다. 예전에는 설 전 골목마다 복조리 장수들의 복조리 사라는 외침이 메아리쳤는데, 그 많던 복조리 장수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복조리를 벽에 걸어 집안에 복이 들어오기를 바란 이 풍속의 소박함을 누가 어리석은 미신이라고 나무랄 수 있을까? 오늘의 안녕과 즐거움이 지난날들의 고난과 불편들에 대한 보상인지를 알겠다. 그래서 한자리에 무탈한 몸으로 무릎을 맞댄 자식들이 고맙고, 여전히 눈빛 형형하고 허리 꼿꼿한 부모님이 고향을 지키고 있어 든든했다.
너도나도 거저 나이를 먹은 게 아니다. 빗방울이 돌을 뚫고, 작은 씨앗들이 무성한 꽃을 피웠다면, 우리 역시나 고난한 날들을 이겨 기어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기 위하여 저곳에서 얼마나 많은 공허의 날들을 견뎠는지! 야속하다, 세월아. 어느덧 나이 들어 예비군 훈련에서도 열외로구나. 그렇다고 한물간 사람 취급하는 건 내 시퍼런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보라, ‘한 줄기 햇살은 암흑에 대한 보상이고,/한 방울의 이슬은 기나긴 가뭄의 대가이거늘!’(심 보르스카) 누이야, 너는 사는 게 힘들어 네 마음이 푸른얼음 속 물고기 같구나. 울지 마라, 누이야.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자. 우리 오남매는 어머니가 한 솥에 끓인 뭇국을 이마 맞대고 먹고 자라난 사이가 아니더냐. 우리는 항상 우리가 만드는 인생극장의 주인공들이었지. 우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바꾸고자 일하고, 아파트 사느라 빌린 은행융자 조금씩 까나가며 열심히 사랑했다. 무위도식하며 가장 게으르게 살아온 자들조차 삼백육십오일을 하루도 빼지 않고 열심히 숨을 쉬며 살아 냈으니,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는 꽃다발을 받아 마땅하다.
아우야, 너는 화덕에 불 피우고, 나는 놋그릇들을 반짝반짝 빛이 나게 닦으마. 제수씨는 명태전 대구전을 부치고, 형수님은 서해 조기를 굽고 남해 문어를 삶아라. 상에는 영주 사과 진영 단감 나주 배를 올리고, 안성 추청미를 깨끗이 씻어 지은 고봉밥을 올리고, 기장 햇미역으로 끓인 미역국도 올려라. 먹고 마시자. 아랫목에는 작년 섣달그믐에 태어난 갓난쟁이 어린 조카가 숨소리 여릿여릿 잠자고, 대청마루에는 뜀박질하는 어린 조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울린다. 서리 내린 듯 머리가 센 아버지가 마당에 멍석을 까신다. 아우야 멍석 위에 윷놀이판을 깔고, 누이들아 너희들은 그 곁에서 널뛰기를 하자. 쌀독이 비어도, 샘물이 얼어도 설날은 온다.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하자.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서정주, ‘꽃밭의 독백’) 삼재(三災)야, 물렀거라! 어둠 속의 야광귀(夜光鬼)들아, 사라져라! 나는 자꾸 쓸개 빠진 놈처럼 실실 웃음이 나온다. 벼락과 해일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일지라도, 오라, 길이여, 그 길을 가마! 꽃아꽃아, 문 열어라. 문밖은 우리 세상, 동티 없는 나날들이구나.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