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직을 가진 사람은 꽃처럼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 제가 하는 일을 통해 날로 성숙되어 간다. 애착과 긍지를 지니고 마음을 다해 꾸준히 힘을 쏟는 그 일이 바로 천직이 아니겠느냐.”

고등학교 시절 갑자기 찾아온 정신분열증으로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던 나석정 씨. 그는 휴학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다가 법정 스님(사진)이 쓴 책 ‘무소유’를 만나 평온을 찾는다. 다시 일터에 나가지만 증상이 도져 번번이 그만두기를 반복한다. 법정 스님이 연 서울 성북동 길상사를 다니며 법정 스님에게 배우고 익힌 바탕 위에서 큰 걸 이루지 않아도 아름다운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은 법정 스님과의 만남을 희망의 근거로 삼아 살아가는 18명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해인 수녀, 혜민 스님, 김선우 시인, 이철수 화백 등 다양한 종교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법정 스님과의 기억을 더듬는다.

이해인 수녀는 법정 스님과 글로 만나 인생의 중요한 시점마다 큰 힘을 얻었다. ‘사람이 아프면 그 사람만 아픈 게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친분의 농도만큼 아프다’는 법정 스님의 글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이해인 수녀는 암투병 중에도 자기를 찾아오는 이들을 정성껏 만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 스님은 미국에서 삶이 고달플 때마다 법정 스님의 책 ‘새들이 날아간 숲은 적막하다’를 꺼내 읽었다고 한다. 혜민 스님은 “법정 스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승려가 글쓰는 문화가 없었을 것”이라며 “법정 스님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홍쌍리 청매실농원 대표는 법정 스님 덕분에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 실의에 빠졌을 때 ‘가파른 산비탈에 꽃 천지를 만들어 도시 사람들이 마음 찌꺼기를 버리고 갈 수 있도록 천국을 만들어 보라’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오늘의 청매실농원을 일궈냈다.

불교도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임의진 목사는 법정 스님의 삶에서 경계 없음을 배웠다고 말한다. 어느해 성탄절 법정 스님은 길상사 밖에 ‘아기 예수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놨다. 임 목사는 “법정 스님은 세상에 벽이 아닌 문을 만드는 삶을 사셨다”며 합하고 어울리고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씨앗을 던져준 분이라고 기억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