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도쿄 외환시장에 짧은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데이비드 립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가 “연 2%로 잡은 일본 정부의 물가상승률 목표치가 타당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 전날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의 조기 사임 발표로 가뜩이나 달아올랐던 외환시장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주문이 줄을 이었다. 덩달아 유로화 가치도 급등했다. 유로화 대비 엔화 가치는 2년10개월 만의 최저치인 유로당 127엔대로 떨어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을 일컫는 ‘아베노믹스’의 지향점은 디플레이션 탈출과 엔저 유도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재정 확대와 금융완화, 미국의 용인 등 세 가지였다. 이 중 가장 손쉬운 재정 확대는 이미 20조엔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해결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가 급락한 배경은 나머지 두 가지 숙제가 한꺼번에 해결됐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우선 금융완화다. 일본은행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풀겠다는 아베 총리에게 시라카와 총재는 눈엣가시였다. 그가 줄곧 아베노믹스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탓이다.

지난해 말 아베노믹스의 골격이 발표된 이후부터 시라카와 총재는 무리한 인플레이션 목표(2%)로 일본 경제가 오히려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시라카와 총재가 자진 사퇴키로 했다는 소식은 엔화 가치 하락세에 가속을 붙이는 요인이 됐다. 외환시장은 그의 조기 사퇴를 아베 총리의 금융완화 정책에 브레이크가 사라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미국의 용인’이라는 마지막 퍼즐은 립튼 부총재가 채워 넣었다. IMF는 실질적으로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는 국제기구로 평가된다. 게다가 립튼 부총재는 미국 정부의 재무부 차관 출신이다. 그의 발언을 미국의 속내라고 해석하는 데 무리가 없는 셈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유럽이 발끈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유럽의회에 참석해 “유로화가 시장 분위기에 따라 출렁거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유럽중앙은행(ECB)이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유럽의 고위 관료가 일본의 양적완화를 비판한 적은 있지만 국가 정상이 인위적인 환율 인하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ECB는 외환시장 대응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유로화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도 “유럽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어떤 제의도 지지할 것”이라고 올랑드 대통령을 옹호했다.

외환시장에서는 당분간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외환 애널리스트들의 말을 인용, “다음달 말까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남윤선 기자/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