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역 2조달러'를 위한 통상조직
지난달 15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통상’ 기능을 외교통상부에서 지식경제부로 이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외교’ 통상이냐 ‘산업’ 통상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이미 산업·자원협력 차원의 통상 업무를 하고 있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경부 주장도, 지금까지 통상교섭의 전문성을 쌓아 왔기 때문에 통상 업무는 외교부에서 계속 맡는 것이 좋다는 반대 쪽 주장도 각각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통상은 산업분야를 맡고 있는 지경부에서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기존처럼 외교부에서 하는 것이 좋을까.

이와 관련, 주요 국가의 통상조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요국들이 무역 규모나 산업구조 등 각국의 사정에 맞는 통상 관련 조직을 운영하고 있어서다. 이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통상조직의 형태는 무엇인지를 찾아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미국은 1962년부터 국무부에서 통상 기능을 떼어내 무역대표부(USTR)를 신설, 관련 업무를 맡게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국가수출전략(NEI)을 추진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초 행정부의 비효율성과 기능 중복을 개선하기 위해 상무부와 USTR 등 6개 부처 통합을 제안했다.

그러면 초고속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세계 양대 슈퍼파워의 하나로 떠오른 중국은 어떤가. 중국 외교부는 통상문제는 관여하지 않고 상무부가 통상 및 교섭을 맡고 있다. 실리에 밝은 일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외무성은 외견상으로는 통상·교섭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통상 교섭은 산업, 무역, 투자, 에너지를 관장하는 경제산업성이 담당하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도 마찬가지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물론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 또한 산업 혹은 기업·기술 관련 부처가 통상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 4개국 등 ‘산업’ 통상 국가들은 모두 제조업 등 산업을 기반으로 국가경쟁력을 키워온 국가들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와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산업’ 통상이 아닌 ‘외교’ 통상을 하는 나라들은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정도다. 이들 국가는 자원 또는 1차 산업에 비교우위가 있거나 중계무역이 발달한 곳이다. 연간 무역 규모가 1조달러가 넘는 ‘산업’ 통상을 하는 나라들과는 여건부터가 다르다.

산업을 토대로 하고 국제경쟁력이 강한 국가들이 하나같이 산업과 연관된 부처에서 통상을 담당하는 ‘산업’ 통상형인 점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바로 이들 ‘산업’ 통상형 국가들이 추구해 온 통상과 산업 간의 시너지 효과, 더 나아가 통상과 산업구조 개편 간의 양방향 소통의 강화가 바로 이들 선진강국이 공통적으로 갖는 통상거버넌스의 핵심임이다.

글로벌 무역 환경에서 국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수출 기업들은 해외투자를 통한 글로벌 공급망 관리와 이를 통한 최적의 생산 및 판매시스템 구축에 여념이 없다. 그야말로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의 토털 사커(total soccer)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각국 정부 또한 이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최근 환율전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만이 아니라 일본, 더 나아가 미국까지도 환율전쟁의 당사국이 되고 있다.

통상은 무역과 해외투자를 포함한 국제 경제 거래의 결정판이다. 그간 우리의 통상은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대변하는 정무적 차원의 ‘외교’ 통상이 주종을 이뤄 왔다. 그러나 치열한 국제 무역의 각축전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젠틀맨십(gentlemanship·신사도)’과 ‘디플로머시(diplomacy·사교)’를 넘어서 산업과 통상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토털 사커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역 2조달러, 선진경제권 진입을 향해 세계 각지에서 뛰고 있는 우리 기업들을 볼 때 한국의 통상교섭 기능이 어느 방향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지는 자명해 보인다.

이학노 < 동국대 교수 경제통상학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