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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칼럼] 윗물의 도덕적 수준이 이 모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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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45위의 한심한 한국 청렴도
    부패 척결 못하면 선진국은 요원
    공직자 비리 다룰 反부패기관 절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김정호 칼럼] 윗물의 도덕적 수준이 이 모양이니…
    인사청문회가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제 아무리 존경받던 인물이라도 청문회에만 나서면 한순간에 망가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대상이 되는 고위공직자 후보들이야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을 검증해야 하는 국회의원이나 청문회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고통도 보통이 아니다. 헌법재판소장 후보 청문회가 그런 경우다.

    뇌물을 받아먹은 것도 아닌데 뭘 그러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기관의 장이 되겠다는 인물을 검증하는 자리다. 재판에 쓰라고 국민이 거둬준 공금을 쌈짓돈으로 쓰고, 그것도 모자라 이자놀이까지 했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그런 의혹에 해명조차 못하는 인물을 과연 그런 자리에 앉힐 수 있을까. 민간기업이라고 하자. 억대 업무추진비의 용처를 증명할 영수증은 없고, 해외출장 길에 가족들과 휴양지로 놀러갔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형사고발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위장전입쯤이야 머리 한번 긁적이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돼버리는 나라다. 비리 의혹을 ‘관행’으로 몰아버리는 사람이 대한민국 공식 국가서열 4위 자리에 앉겠다는 나라다. 윗물의 도덕불감증이 이 지경이니 아랫물이 맑을 리 없다. 도덕불감증이 비리를 낳고, 부정의 방법만 더 기기묘묘해질 뿐이다.

    해외 전문기관들은 여전히 한국을 심각한 부패국가로 구분한다. 지난 연말 세계투명성기구가 발표한 한국의 청렴도는 세계 45위에 불과하다. 2009년에는 39위까지 올라서 봤다지만 39위나 45위나 거기가 거기다. 아프리카의 후진국 르완다를 한두 계단 차이로 앞서는 그런 수준 말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작년 말 조사결과도 마찬가지다. 공무원 스스로는 행정 분야의 부패수준이 5년 전에 비해 나아졌다고 답했지만 실제 그들을 접하는 기업인과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지난 5년간 입만 떼면 공정사회를 말하면서도 정작 제 눈의 들보는 보질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공공 부조리를 조금도 개선하지 못해 G20 국가, 수출 7위의 무역대국이라는 성과는 빛이 바래고 말았다. 경제의 흐름을 저해하는 요소를 민간에서만 찾으려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한국의 청렴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까지만 개선돼도 경제성장률이 0.65%포인트 높아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2012·현대경제연구원)는 부패가 한국 경제를 얼마나 갉아먹고 있는지를 쉽게 짐작하게 한다. 청렴도만 개선해도 잠재성장률을 4%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고 보면 선진국의 문턱에서 늘 좌절하는 우리에게는 가장 필요한 처방인 셈이다.

    물론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박은 부패를 일거에 몰아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윗물인 고위공직자들부터 투명하게 관리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이들의 부패를 강력히 통제할 수 있는 법과 조직부터 정비하는 일이 필요하다. 선진국으로 진입한 국가 대부분이 강력한 반부패법과 반부패조사기구를 두고, 무관용(zero tolerance) 원칙을 고수한 나라들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폐지키로 했고, 감사원도 기대할 게 없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간판을 계속 바꿔달면서 독립성이 훼손됐다. 대통령 당선인이 두기로 한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에 초점을 두고 있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기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가 어디서 고위공직자의 비리와 부패를 진단하고 단속할 것인지.

    국가청렴도 세계 1위라는 뉴질랜드는 중대비리조사청(SFO)이라는 독립된 반부패 기관을 두고 있다. 부패 척결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는 기관이다. 지난해 이 기관의 안테나에 걸려든 환경부 장관이 단칼에 해임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비리라는 것이 우리 기준으론 별게 아니다. 사고보상공사(ACC)라는 공적보험을 다루는 정부 부처의 장관 시절, 의료평가기관에 장관 문양이 새겨진 편지지로 의견서를 보내 친구가 상해보상을 조금 빨리 받을 수 있도록 손을 써줬다는 것이다.

    뉴질랜드가 아니니, 그런 기관이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다. 뉴질랜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아니니,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 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 그렇게 또 5년을 흘려보내자. 선진국의 꿈만 더 멀어질 뿐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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