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끼어든 말리 내전…산유국 알제리로 불똥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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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인질극…알제리군 총격에 35명 사망
외교부·KOTRA "인질 가운데 한국인은 없다"
외교부·KOTRA "인질 가운데 한국인은 없다"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시작된 이슬람 반군과 정부군 간 전쟁의 불씨가 인접국가 알제리로 옮겨 붙으며 ‘사막의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은 16일(현지시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동부 인아메나스에 있는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석유가스 개발 현장을 습격했다고 보도했다. 이들과 알제리군이 대치하던 중 교전이 일어나 인질로 붙잡혔던 외국인 근로자 등 35명과 납치범 15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방송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연계된 알카에다이슬람마그레브(AQIM)가 이번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들은 “프랑스가 말리 북부를 공격하도록 영공을 열어준 알제리의 간섭에 대한 보복”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모델
사하라 사막 남부 교역로에 있는 말리는 전통적으로 아프리카 이슬람 문화의 중심이었다. 1960년 프랑스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1992년과 1997년, 2000년 각각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뤘고 2011년 여성 총리를 뽑았다.
말리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지난해 1월. 자치 독립을 요구하는 북부 유목민 투아레그족이 AQIM과 손잡은 뒤 아자와드해방국민운동(MNLA)을 출범, 정부와의 대대적 전쟁을 선포했다. 때마침 말리 군부가 3월 쿠데타를 일으켜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이슬람 반군은 말리 북부를 모두 장악했다. 몇 주 만에 정부군을 몰아냈고, 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공개 처형 등을 보며 겁에 질린 주민 40만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1년 이상 내전을 지속하던 말리 정부는 수도 바마코까지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자 프랑스에 지원을 요청했다. 말리 반군 규모는 1300명 수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0일 “테러 소탕과 말리에 사는 프랑스인 보호를 위한 것”이라며 개입을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1400여명의 지상군과 장갑차, 폭격기 등을 동원해 함락 위기를 넘겼다. 지금까지 최대 100여명의 반군이 사망하고 15만명의 난민이 국경을 넘었다.
말리 사태가 알제리 피랍 사건으로 번지자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미국은 군사 첩보 공유를, 영국과 독일은 수송기 지원 등을 약속하며 프랑스의 결정에 힘을 보탰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도 2000명의 아프리카연합 지원군을, 유럽연합(EU)도 200여명 규모의 훈련관을 파견키로 했다.
◆테러리스트들의 천국으로 변질
말리는 땅이 비옥하지는 않지만 국토 면적은 프랑스의 약 2배다. 우라늄과 금 매장량도 많아 서구의 관심을 끌어왔다. 그런데도 내전을 치르는 1년 동안 국제사회가 머뭇거렸던 이유는 뭘까.
말리는 서아프리카의 요충지다. 알제리 모리타니 등 7개국과 맞닿아 있다. 2011년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되면서 테러리스트들의 요새가 됐다. 상당량의 무기가 유입됐기 때문이다. 무장 세력들은 말리를 거점으로 코카인 등 남미의 마약, 무기와 인력을 유럽으로 보냈다. ‘강력 범죄자들의 천국’이 된 말리에는 AQIM과 함께 안사르 디네, 무자오 등 3개 이슬람 반군 세력이 활개를 쳤다. 무장 세력이 장악한 사하라 사막 일대는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강력한 테러 조직을 상대로 기약 없는 전쟁을 치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미국이 이전 아프가니스탄 내전 개입으로 얻은 것이 없다는 의식도 한몫했다. 무장세력이 민간인과 섞여 숨어버린다면 말리 북부는 1992년 소말리아와 같은 환경으로 변할 공산이 크다. 말리를 장악한 반군 무자오의 지도자 오마르 오울드 하마하는 “프랑스는 지옥문을 열었다. 프랑스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보다 훨씬 더 위험한 덫에 걸렸다”고 말했다.
◆“한국인 인질 1명” 주장도
이슬람 반군 세력이 서방의 개입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알제리 피랍 사건을 벌이면서, 사하라 일대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렸다. 산유국인 알제리의 석유 개발 시설에서 피랍 사건이 발생한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자칫 이슬람 세력이 분포해 있는 주변 국가들에까지 분쟁이 확산될지 모 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알제리 가스시설을 급습한 이슬람 무장단체는 피랍됐던 인질 40여명에 한국인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무장단체에 따르면 인질에는 한국과 노르웨이, 프랑스, 미국, 영국, 루마니아, 콜롬비아, 태국, 필리핀, 아일랜드, 독일 출신 근로자들이 포함돼 있다. 이 중 일부는 탈출에 성공했고, 일부는 알제리군과의 교전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권 위성TV 알자지라는 “2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7명의 인질이 여전히 붙잡혀 있다”고 전했다.
외교통상부와 KOTRA는 “무장단체가 공격한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은 1명도 없다”며 “한국인 인질도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모델
사하라 사막 남부 교역로에 있는 말리는 전통적으로 아프리카 이슬람 문화의 중심이었다. 1960년 프랑스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1992년과 1997년, 2000년 각각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뤘고 2011년 여성 총리를 뽑았다.
말리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지난해 1월. 자치 독립을 요구하는 북부 유목민 투아레그족이 AQIM과 손잡은 뒤 아자와드해방국민운동(MNLA)을 출범, 정부와의 대대적 전쟁을 선포했다. 때마침 말리 군부가 3월 쿠데타를 일으켜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이슬람 반군은 말리 북부를 모두 장악했다. 몇 주 만에 정부군을 몰아냈고, 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공개 처형 등을 보며 겁에 질린 주민 40만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1년 이상 내전을 지속하던 말리 정부는 수도 바마코까지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자 프랑스에 지원을 요청했다. 말리 반군 규모는 1300명 수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0일 “테러 소탕과 말리에 사는 프랑스인 보호를 위한 것”이라며 개입을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1400여명의 지상군과 장갑차, 폭격기 등을 동원해 함락 위기를 넘겼다. 지금까지 최대 100여명의 반군이 사망하고 15만명의 난민이 국경을 넘었다.
말리 사태가 알제리 피랍 사건으로 번지자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미국은 군사 첩보 공유를, 영국과 독일은 수송기 지원 등을 약속하며 프랑스의 결정에 힘을 보탰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도 2000명의 아프리카연합 지원군을, 유럽연합(EU)도 200여명 규모의 훈련관을 파견키로 했다.
◆테러리스트들의 천국으로 변질
말리는 땅이 비옥하지는 않지만 국토 면적은 프랑스의 약 2배다. 우라늄과 금 매장량도 많아 서구의 관심을 끌어왔다. 그런데도 내전을 치르는 1년 동안 국제사회가 머뭇거렸던 이유는 뭘까.
말리는 서아프리카의 요충지다. 알제리 모리타니 등 7개국과 맞닿아 있다. 2011년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되면서 테러리스트들의 요새가 됐다. 상당량의 무기가 유입됐기 때문이다. 무장 세력들은 말리를 거점으로 코카인 등 남미의 마약, 무기와 인력을 유럽으로 보냈다. ‘강력 범죄자들의 천국’이 된 말리에는 AQIM과 함께 안사르 디네, 무자오 등 3개 이슬람 반군 세력이 활개를 쳤다. 무장 세력이 장악한 사하라 사막 일대는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강력한 테러 조직을 상대로 기약 없는 전쟁을 치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미국이 이전 아프가니스탄 내전 개입으로 얻은 것이 없다는 의식도 한몫했다. 무장세력이 민간인과 섞여 숨어버린다면 말리 북부는 1992년 소말리아와 같은 환경으로 변할 공산이 크다. 말리를 장악한 반군 무자오의 지도자 오마르 오울드 하마하는 “프랑스는 지옥문을 열었다. 프랑스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보다 훨씬 더 위험한 덫에 걸렸다”고 말했다.
◆“한국인 인질 1명” 주장도
이슬람 반군 세력이 서방의 개입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알제리 피랍 사건을 벌이면서, 사하라 일대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렸다. 산유국인 알제리의 석유 개발 시설에서 피랍 사건이 발생한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자칫 이슬람 세력이 분포해 있는 주변 국가들에까지 분쟁이 확산될지 모 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알제리 가스시설을 급습한 이슬람 무장단체는 피랍됐던 인질 40여명에 한국인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무장단체에 따르면 인질에는 한국과 노르웨이, 프랑스, 미국, 영국, 루마니아, 콜롬비아, 태국, 필리핀, 아일랜드, 독일 출신 근로자들이 포함돼 있다. 이 중 일부는 탈출에 성공했고, 일부는 알제리군과의 교전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권 위성TV 알자지라는 “2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7명의 인질이 여전히 붙잡혀 있다”고 전했다.
외교통상부와 KOTRA는 “무장단체가 공격한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은 1명도 없다”며 “한국인 인질도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