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길이가 60㎝ 안팎인 담비(사진)가 남한에서 자취를 감춘 호랑이를 대신해 야생에서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최근 4년 동안 무선 위치추적, 무인 카메라, 배설물을 이용한 먹이 분석 등의 방법으로 담비(멸종위기 2급)의 행동권과 먹이 습성을 연구한 결과 이같이 확인됐다고 13일 발표했다. 담비가 남긴 배설물 414점을 분석한 결과 멧돼지와 고라니 등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큰 대형 포유류가 전체 먹이의 8.5%를 차지했다. 청설모 다람쥐 멧토끼 두더지 말벌 등 동물성 먹이가 50.6%, 다래 버찌 머루 감 등 식물성은 49.4%였다.

담비는 지리산에서 10㎢당 1~1.6마리가 서식하는 등 국내에 2000마리 정도가 살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과학원은 2~3마리씩 무리지어 다니는 담비는 한 무리가 고라니나 멧돼지를 연간 9마리, 청설모는 75마리가량 잡아 먹는 것으로 추정했다.

자그마한 체구의 담비가 대형 포유류를 제압할 수 있는 이유는 단독 생활을 하는 다른 맹수들과 달리 2~3마리가 역할을 분담해 ‘파상공격’을 펴는 데다 용맹성도 타고 났다는 게 환경과학원의 설명이다. 최태영 환경과학원 연구사는 “사체나 발자국 정황을 보면 담비는 맹수처럼 숨통을 한 번에 끊지는 못하지만 여러 마리가 올라타 여기저기를 물어뜯어 상대를 쓰러뜨린다”고 말했다.

담비는 야생동물에 의한 작물 피해를 줄이는 데도 활용 가치가 있다고 환경과학원은 밝혔다. 담비가 즐겨 먹는 멧돼지나 고라니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대표적인 야생동물이다. 청설모는 잣 호두 밤 등 고소득 견과류에, 말벌은 양봉에 타격을 준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