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양자·다자 통상체제 동시 활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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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협상 지연에 교역비용 늘어…무역비중 큰 한국엔 생존의 문제
WTO, 조기합의 가능 방안 마련
최석영 < 주 제네바 대사 sychoi79@mofat.go.kr >
WTO, 조기합의 가능 방안 마련
최석영 < 주 제네바 대사 sychoi79@mofat.go.kr >
스위스 제3의 도시인 제네바는 명실공히 국제 통상협상의 산실이다. 수많은 협상이 이곳에서 잉태되고 타결된다. 1947년 제네바에 둥지를 튼 ‘관세 및 자유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는 8차례에 걸친 무역라운드를 통해 전후의 국제무역질서를 발전시켰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로 변신하면서, 보다 실용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조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제네바는 지금 깊은 피로감에 빠져 있다. 2001년부터 진행된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장기화하면서 타결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 요인과 내부 갈등이 협상 장기화의 주요인이다.
우선, 유럽과 미국의 심리적 위축을 꼽을 수 있다. 유럽의 겨울은 유난히 을씨년스럽다. 유로존은 국가채무 문제가 악화되면서 금융경색, 재정긴축, 소비와 투자위축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미국은 높은 실업률의 위기를 겪고 있다. 수년간 다자통상체제를 통한 자유화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2007년 6월 종료된 ‘신속협상권한’을 갱신할 정치적 여건도 조성되지 못했다.
둘째,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개발도상국가의 급부상에 따른 다자체제의 지형 변화다. DDA 협상 과정에서 개도국은 개발을 담보하지 않는 자유화 또는 무역규범 도입에 극히 소극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이 커지면서 상호 불신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정상급 포럼인 주요 20개국(G20)도 지도력 발휘에 한계를 보이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보호무역조치 도입도 불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알려진 지역무역협정의 ‘도미노 현상’이다. 지역무역협정은 체결 당사국 간에만 특혜관세로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비당사국은 특혜관세에 배제되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지역무역협정 체결의 도미노에 합류할 유인이 생긴다. 지역무역협정은 ‘맞춤형 자유화’를 할 수 있고, 현행 관세율을 기준으로 관세감축을 함으로써 협정체결 효과가 조기에 실현되는 이점도 있다. 이런 점이 다자협상 추진의 유인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다자주의의 쇠퇴라고 진단한다. 다자간 협상타결의 지연은 복잡한 지역규범의 난립을 초래함으로써, 결국 무역활동의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선진국 중심으로 성안된 기존의 통상규범은 개도국의 변화된 위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다자간 협상이 다소 지연된다고 해서, 다자간 통상체제가 후퇴한다는 주장은 성급한 단견이다. WTO는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입법기능, 합의된 규범을 이행하는 행정기능, 분쟁을 해결하는 사법기능을 포괄하는 복합적인 국제기구다. 전체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WTO는 수십년 간 축적된 다자 무역규범의 이행과 모니터링이라는 행정기능과 통상분쟁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사법기능을 여전히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역무역협정 체제는 다자 무역체제를 보완하면서 공존해 나갈 것이다.
WTO 체제의 활성화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다. 국제상공회의소(ICC)는 지속적으로 조속한 DDA 협상 타결을 주문하고 있다. 서비스나 정보기술 분야의 부분적 추가 자유화도 요구한다. 정부 차원의 노력도 다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금 제네바에서는 모든 협상 이슈를 일괄타결하는 방안보다는 무역 원활화 등 조기합의가 가능한 ‘소규모 패키지’ 구성에 집중하고 있다. 덜 민감한 이슈를 먼저 다룸으로써 상호신뢰를 회복하고, 차기 통상협상을 추진하는 탄력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올해 12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WTO 통상장관회의는 다자 통상체제의 장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2년 연속 대외무역액 1조 달러를 달성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다자통상체제의 활성화는 생존의 문제다. 미국 및 유럽연합(EU)과 FTA를 체결한 저력으로 다자간 협상에 임해 통상이익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최석영 < 주 제네바 대사 sychoi79@mofat.go.kr >
제네바는 지금 깊은 피로감에 빠져 있다. 2001년부터 진행된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장기화하면서 타결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 요인과 내부 갈등이 협상 장기화의 주요인이다.
우선, 유럽과 미국의 심리적 위축을 꼽을 수 있다. 유럽의 겨울은 유난히 을씨년스럽다. 유로존은 국가채무 문제가 악화되면서 금융경색, 재정긴축, 소비와 투자위축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미국은 높은 실업률의 위기를 겪고 있다. 수년간 다자통상체제를 통한 자유화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2007년 6월 종료된 ‘신속협상권한’을 갱신할 정치적 여건도 조성되지 못했다.
둘째,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개발도상국가의 급부상에 따른 다자체제의 지형 변화다. DDA 협상 과정에서 개도국은 개발을 담보하지 않는 자유화 또는 무역규범 도입에 극히 소극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이 커지면서 상호 불신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정상급 포럼인 주요 20개국(G20)도 지도력 발휘에 한계를 보이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보호무역조치 도입도 불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알려진 지역무역협정의 ‘도미노 현상’이다. 지역무역협정은 체결 당사국 간에만 특혜관세로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비당사국은 특혜관세에 배제되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지역무역협정 체결의 도미노에 합류할 유인이 생긴다. 지역무역협정은 ‘맞춤형 자유화’를 할 수 있고, 현행 관세율을 기준으로 관세감축을 함으로써 협정체결 효과가 조기에 실현되는 이점도 있다. 이런 점이 다자협상 추진의 유인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다자주의의 쇠퇴라고 진단한다. 다자간 협상타결의 지연은 복잡한 지역규범의 난립을 초래함으로써, 결국 무역활동의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선진국 중심으로 성안된 기존의 통상규범은 개도국의 변화된 위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다자간 협상이 다소 지연된다고 해서, 다자간 통상체제가 후퇴한다는 주장은 성급한 단견이다. WTO는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입법기능, 합의된 규범을 이행하는 행정기능, 분쟁을 해결하는 사법기능을 포괄하는 복합적인 국제기구다. 전체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WTO는 수십년 간 축적된 다자 무역규범의 이행과 모니터링이라는 행정기능과 통상분쟁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사법기능을 여전히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역무역협정 체제는 다자 무역체제를 보완하면서 공존해 나갈 것이다.
WTO 체제의 활성화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다. 국제상공회의소(ICC)는 지속적으로 조속한 DDA 협상 타결을 주문하고 있다. 서비스나 정보기술 분야의 부분적 추가 자유화도 요구한다. 정부 차원의 노력도 다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금 제네바에서는 모든 협상 이슈를 일괄타결하는 방안보다는 무역 원활화 등 조기합의가 가능한 ‘소규모 패키지’ 구성에 집중하고 있다. 덜 민감한 이슈를 먼저 다룸으로써 상호신뢰를 회복하고, 차기 통상협상을 추진하는 탄력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올해 12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WTO 통상장관회의는 다자 통상체제의 장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2년 연속 대외무역액 1조 달러를 달성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다자통상체제의 활성화는 생존의 문제다. 미국 및 유럽연합(EU)과 FTA를 체결한 저력으로 다자간 협상에 임해 통상이익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최석영 < 주 제네바 대사 sychoi79@mofat.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