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문제가 영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대금 지급을 미루면서 ‘돈맥경화’가 생겨 중소기업이 잇따라 피해를 입고 있어서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5일(현지시간) 중소기업이 납품을 마치고도 대기업에서 받지 못한 돈의 규모가 365억파운드(약 62조3000억원)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많은 중소기업들은 180~200일까지 납품대금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자영업포럼은 영세업체들이 계약한 기간보다 평균 41일 늦게 납품대금을 받고 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대기업들이 납품대금 지급 기일을 늦추면서 논란에 불이 붙고 있다. 영국 2위 이동통신사 오투(O2)는 지난달 납품업체들에 대금 지급 기한을 납품일로부터 180일까지 연장하겠다고 통보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세인즈버리(Sainsbury)도 지난해 10월 대금 지급 기일을 30일에서 75일로 연장했다. 텔레그래프는 금융위기 이후 사업환경이 나빠지면서 대기업들의 대금 지급 연기가 일상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와 중소기업들은 이 같은 움직임에 반발하고 나섰다. 마이클 펄론 상공부 장관은 “현금더미를 쌓아놓고 있는 대기업들이 납품업체에 제때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불공정한 행위”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필 오포드 자영업포럼 회장은 “느린 납품대금 지급이 중소기업들에 재앙이 되고 있다”며 “유감스럽게도 이 같은 관행은 모든 사업영역에 만연해 있으며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정부는 대기업들을 ‘신속지급 협약(prompt payment code)’에 가입시켜 대금 지급 기일을 어길 경우 불이익을 받도록 할 방침이다. 2008년 만들어진 이 협약은 대기업들의 정확한 납품대금 지급 명시와 준수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납품업체에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펄론 장관은 “작년 10월 영국 런던 증시의 FTSE350지수에 포함되는 모든 대기업 최고경영자에게 협약 가입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했으며 지금까지 54개 기업이 가입했다”며 “다음달에는 가입하지 않은 기업들의 명단을 따로 정리해 공개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