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신임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된 이동흡 전 헌재 재판관(사법연수원 5기·사진)은 재판관 경력 6년에 앞서 28년간 법원에도 재직한 정통 법관 출신이다. 그는 민·형사법뿐만 아니라 공정거래·지식재산권·조세 분야에서 남다른 식견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24년 헌재 역사상 헌법재판관 출신으로는 처음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만큼 헌재의 위상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취임하면 헌재 위해 열심히 뛰겠다”

이 후보자는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헌재소장으로 갑자기 지명돼 기분이 얼떨떨하다”며 “국회 인사청문 과정 등이 남아 있어 청문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헌재소장으로 정식 취임하면 헌재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조만간 국회에 이 후보자에 대해 헌법재판관 겸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어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본회의 임명동의안 의결 등을 거쳐 최종 임명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 전 재판관 전격 지명은 이강국 소장(67·사법시험 8회) 퇴임 이후 소장 공백사태를 없애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측은 전날인 2일까지도 ‘헌재소장 인선과 관련해 이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사이에 특별한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철통보안 속에서 인선을 하는 게 박 당선인의 스타일”이라는 말로 배경을 설명했다.

◆헌재 개소 이후 첫 재판관 출신 소장

1988년 헌재 개소 이후 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조규광 씨가 초대소장을 맡았고, 이어 3명의 대법관이 소장 자리를 꿰찼다. 24년 만에 첫 재판관 출신 소장이 탄생한 것이다. 헌재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그러잖아도 최고 사법기관 자리를 놓고 벌여온 대법원과의 신경전은 더 잦아질 전망이다. 이 지명자는 법원판결에 대해 헌재가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한경과의 인터뷰에서 “공권력 행사의 대표적인 사례가 재판”이라며 “법원이 정신 바짝 차리고 법을 바로 해석할 수 있도록 헌재가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구 출신의 보수적 성향

대구 출신의 이 후보자는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TK(대구·경북)로 분류된다. 4기 재판관 가운데서도 가장 보수적 색채가 짙은 성향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꼭 보수적 성향의 판결만 내렸던 것은 아니다. 2005년 서울고법 특별부 부장판사로 재직할 당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신효순·심미선 양의 가족이 검찰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검찰이 보유한 미군 수사기록 대부분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또 법적 안정성도 강조한다.

이 후보자는 영어 일어 중국어 독일어 등 외국어에도 능통하다. 아시아 국가들의 헌법재판기관 회의체인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의 창립 준비를 위해 2008년 4월부터 3년간 준비위원장을 맡은 것도 그의 국제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SNS 선거운동 금지는 합헌’

이 후보자의 헌법재판관 재임 중 대표적인 결정으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 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합헌 의견을 낸 것이 꼽힌다. 당시 재판관 8명 중 6명이 한정위헌 의견을 냈으나 이 후보자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선거운동에 준할 정도의 영향력 있는 표현행위가 가능해질 경우 후보자 간 조직동원력, 경제력에 따른 불균형이 발생할 소지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보험에 가입한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냈어도 피해자가 사망하지만 않으면 형사처벌할 수 없도록 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위헌 결정한 바 있다. 종래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교통사고로 불구가 되거나 불치, 난치질병이 생겨도 운전자가 종합보험에 가입한 이상 뺑소니나 음주운전 등이 아니면 검사가 기소할 수 없도록 했다. 이 후보자는 “죽음보다 더 나쁠 수 있는 식물인간이 됐는데도 종합보험에 가입했다고 면책토록 한 것은 피해자의 법정진술권을 침해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동흡 후보자 약력

△1951년 대구 출생 △경북고 △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15회 △대법원 재판연구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서울가정법원장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실무위원 △헌법재판관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