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다음달 출범한다. 박 당선인은 선거 때 강조했던 민생과 복지를 정책으로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에 벌써 착수했다. 그러나 외교·안보분야에 대해선 선거유세 때나 지금이나 구체적 언어가 없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쏘고,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으르렁거릴 때도 그랬다. 차기정부의 외교·안보 노선의 밑그림은 아직 짐작하기가 어렵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를 보면 딱히 답안을 내놓기 힘들 것도 같다. 북한의 모험주의적 도발은 기승을 부리고 강대국들이 극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만주사변 이후 중·일 관계는 이미 최악이란 평이다. 아시아로의 회귀를 천명한 미국은 극우로 치닫는 일본과의 연대강화로 중국에 대한 견제를 노골화하고 있다.

보편 가치를 나침반 삼아

하지만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당장 5일 중국인 류창에 대한 재판부터 문제다. 그는 일본 야스쿠니신사 입구 기둥에 불을 지른 뒤 입국했다가 체포됐다. 법원이 정치범이라고 판단하면 중국으로, 아니라면 일본으로 보내야 한다. 중국과 일본 모두 매머드 변호인단을 꾸려 자국송환에 사생결단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판결이 어떻게 나든 한쪽의 강력한 반발은 피할 수 없는 형국이다.

선택을 요구받는 것은 이뿐 아니다. 미국은 한국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끌어들일 태세다.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한다는 목표가 분명하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지난달 말 ‘중국을 정치·군사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포위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선택은 시한부다.

강대국의 대립이 심해질수록 한국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좁아진다. 북한의 핵 위협에 한국이 독자적 응징이 아닌 국제사회의 집단적 제재에 의지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제재는 북한의 후원자인 중국의 비협조란 철벽에 막혀 있다. 북한에 핵개발의 시간만 벌어주는 꼴인 6자회담의 낡은 프레임에 갇혀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국내 정치이익 탐해선 안돼

한국이 선택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 같은 힘도 없고, 정부가 결정하면 그만인 중국의 결단력도 한국엔 없다. 그럴수록 우리의 외교·안보 전략은 국제사회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과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협력과 연대의 단단한 고리가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신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대내적 중심가치여야 하는 것은 물론 ‘박근혜 외교 독트린’에도 밑바탕이 돼야 한다.

기우라고 하겠지만 외교·안보를 빌미삼아 국내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해서는 곤란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소위 유연한 대북정책이 빠졌던 함정도 피해야 한다. 남북화해라는 그럴듯한 명분에 집착한 결과 한국은 북한에 계속 끌려다니기만 했다. 물론 안보도 보장받지 못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며 국내 정치적 파워게임에 몰입하다가 망국의 슬픔을 겪었던 100여년 전의 교훈도 되새겨야 한다.

역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래서 중요하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차기정부는 21세기 들어 가장 어려운 대외환경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당선인의 어깨에 한반도의 미래가 달려있다. 역사에 남을 ‘박근혜 독트린’을 기대한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