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최고 38%의 세금을 물리는 금융소득 종합과세 적용기준을 내년부터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바로 시행된다. 대상자가 5만명에서 20만명으로 늘고 연간 3000억원을 더 걷는다고 한다. 여야는 또 조세개혁특위를 신설해 소득세 법인세 등을 종합 검토키로 했다. 증세 대상은 고소득자와 대기업이 될 게 뻔하다. 국회가 브레이크 없는 ‘부자 증세’의 시동을 건 셈이다.

과세의 기본은 헌법 59조에도 명시된 ‘조세 법률주의’다. 법률의 근거없이 국가가 세금을 부과·징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 재산권이 국가에 의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조세 법률주의는 국회가 법으로 정하기만 하면 제멋대로 증세해도 된다는 면허증이 아니다. 다수가 찬성하더라도 개인이나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고 차별하는 입법이라면 결코 정의로운 법이라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몇몇이 밀실에 앉아 예산안 처리와 부자 증세를 흥정한 것은 입법 횡포다. 공론화는커녕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없었다.

국가의 조세제도는 무엇보다 공평성 투명성 보편성에 입각해야 한다. 이런 원칙을 벗어난 세금은 강력한 저항을 낳게 마련이다. 프랑스 올랑드 정부가 연소득 100만유로(약 14억원) 이상 부자에게 세율 75%의 부유세를 물리려 하자 기업인 연예인 등 부자들의 ‘세금망명’이 잇따른 게 대표적인 사례다.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가구별로 부과되는 소득세와 달리 개인에게만 75%를 물리는 것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부부가 각각 99만유로를 벌면 부과대상이 아니고, 한 사람이 100만유로 이상 벌면 고율 과세하는 게 공평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실천을 위해선 내년 27조원의 예산이 추가로 든다는 계산서가 이미 나와 있다. 새누리당이 주장하듯 세출 조정, 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로 늘어날 세수는 기껏해야 몇 조원이다. 결국 당장 손쉬운 부자 증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회가 국민의 재산을 축내는 세금 입법을 남발한다면 그것은 재앙이다. 이런 국회에 조세원칙에 입각한 장기적 안목의 조세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