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다 보면 ‘생각보다 양이 적은 것 같다’고 의심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양을 재 볼 방법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2개월 이내 생맥주를 마신 적이 있는 20~6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7.6%가 “생맥주 주문량과 실제 양에 차이가 있다”고 답했다. 소비자원이 이런 의심을 풀기 위해 생맥주 판매업소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시중 판매 생맥주가 메뉴판에 표기된 용량보다 최대 31% 적게 나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비자원은 최근 서울 강남·신림·신천·홍대·종각·혜화역 인근 등 6개 지역에서 각각 5개 업소, 모두 30개 업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생맥주 판매 실태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소비자원이 생맥주를 용량별로 주문해 실제 제공량을 측정한 결과 메뉴에 표기된 주문량보다 평균 13~23% 적은 양이 나왔다. 업소마다 편차도 크게 벌어져 똑같은 3000㏄를 시키더라도 실제 생맥주 양은 최고 460㏄까지 차이가 났다.

500㏄를 주문했을 때는 87%인 평균 435㏄(373~488㏄)만 채워져 나왔다. 2000㏄를 시켰을 때는 77.2%인 평균 1544㏄(1410~1665㏄), 3000㏄짜리는 77%인 평균 2309㏄(2050~2510㏄)만 나왔다. 대용량을 주문할수록 상대적으로 적은 양이 나오는 셈이다. 이 때문에 대용량 생맥주를 시켜도 ‘비용 절감 효과’가 크지 않았다. 500㏄ 평균 판매가는 3130원, 2000㏄는 1만930원이었다. 실제 제공량에 따라 환산한 ㏄당 가격은 각각 7.2원과 7.1원으로 차이가 거의 없었다.

소비자원은 ‘생맥주 용량 뻥튀기’의 원인으로 업소들의 ‘양심 불량’과 함께 잔과 용기를 지목했다. 업소에서 사용하는 생맥주 잔과 용기는 대부분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등 제조사가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다. 500㏄ 유리잔은 표기된 용량과 실제 용량이 일치했지만, 2000㏄와 3000㏄짜리 플라스틱 용기는 실제 용량이 1700㏄와 2700㏄에 불과했다. 생맥주를 거품 없이 가득 채워도 300㏄가 부족한 것이다. 업소들이 용기보다 용량을 부풀려 메뉴판에 표기해왔고 공급사들도 이를 방치해 사실상 묵인했다는 지적이다.

‘맥주 종주국’으로 꼽히는 독일에서는 제조업체들이 맥주의 특성에 맞게 전용 잔을 만들고 눈금을 표시해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송규혜 소비자원 식품미생물팀장은 “500㏄ 잔에는 용량 표시가 아예 없고 2000㏄와 3000㏄ 용기에는 포장박스 겉면이나 바닥에만 표기돼 있어 소비자가 맥주 양을 확인할 수 없다”며 “용기에 용량선을 명확히 표시하고, 메뉴판에도 정확한 제공량을 적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등 제조사들은 소비자원의 지적에 따라 내년 초부터 500㏄ 잔과 1700·2700cc 용기에 각각 450cc와 1500·2500㏄ 용량선을 표기한 잔과 용기를 단계적으로 판매업소에 보급하기로 했다. 국내 생맥주 출고량은 지난해 30만㎘로 전체 맥주 출고량의 16.3%를 차지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