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동에 모진 매질…얼마나 힘드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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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는 극우파 득세…청소년들은 근로정신대 할머니 찾아 '역사 알기' 3박4일
"할머니가 겪은 참담한 세월 반복않게 저희가 힘쓸게요"
"할머니가 겪은 참담한 세월 반복않게 저희가 힘쓸게요"
“할머니 힘내세요. 이런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저희가 노력할게요.”
28일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지구 NGO센터. 일본 나고야 도카이중학교 3학년 모치쓰키 다쓰토 군(16)이 양금덕 할머니(84)의 두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 비행기공장에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당한 강제노역의 참담한 경험담을 일본 학생들에게 들려줬다. 일본 중·고등학생 11명 중 일부는 할머니의 얘기가 진행되는 동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일본 학생들과 2박3일간 같이 생활해온 비슷한 또래 광주 학생 16명도 함께했다.
할머니는 전남 나주대정국민학교 6학년(13세) 때인 1944년 3월 “교사 수준의 급여를 주고 중학교에도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에서 19개월 동안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어린 나이에 감당키 어려운 하루 10시간 중노동을 견뎌야 했고, 허기에 지쳐 일본인이 먹다버린 음식을 주어먹다 모진 매질도 당했다. 같이 일하던 한국인 징용자 6명이 사고로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광경도 지켜봤다. 일제 패전 후인 1945년 10월 “그동안 적립해온 임금을 나중에 보내준다”는 말에 또 속아 빈털터리로 집에 돌아왔던 일도 담담하게 얘기했다.
일본 청소년들은 지난 26일부터 나흘간 광주에서 열리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한·일 청소년 교류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왔다. 이들은 나고야의 한·일역사연구모임인 ‘함께’소속 회원들이다. 현재 10개 학교 회원 20여 명이 활동 중이다.
인솔교사 히사다 미쓰마사 씨(56·도카이고교)는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모임 이름을 한국어로 지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극우파들이 득세해 일본 내에서 이런 모임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면서도 “어렵지만 학생 교류가 두 나라를 서로 가까워지게 하는 지름길임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학생들도 광주지역 역사연구동아리 회원들이다. 8개 학교 100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그동안 미쓰비시중공업의 사죄와 반성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8월 한국 학생들을 이끌고 일본을 방문했던 교사 이동언 씨(51·광주 동신여고)는 “매주 나고야에서 도쿄까지 왕복 700㎞를 오가며 미쓰비시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일본 측 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활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모임이 거듭되면서 두 나라 청소년들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화해는 우정과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일본 학생대표 센다 다케히로 군(17·도카이고교 1년)은 “한국 친구들을 만난 게 이번이 네 번째”라며 “만날수록 동질감과 친근감이 더해져 지금은 개인적인 얘기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스스럼없이 터놓고 지내는 사이로 발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 측 참가자인 안인숙 양(17·광주 수피아여고 1년)은 “아직은 독도처럼 민감한 문제를 꺼내면 일본 친구들이 거부감을 보인다”며 “하지만 서로 더 마음을 열면 이해할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광주=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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