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佛家)에선 절하는 모습을 보면 공부(工夫)가 얼마나 됐는지 단박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내면 수양의 경지가 자연스레 드러난다는 것이다. 공부가 부족한 수행자는 대개 목표한 배(拜)수를 조급하게 채우려는 마음에 호흡이 들떠 있고 몸의 절도가 틀어진다. 반면 웬만큼 공부가 된 수행자는 마음이 착 가라앉아 호흡이 고르며 몸은 반듯하다. 긴 시간 반복해 절을 하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흐트러짐도 없다.

한의학에도 절하는 자세로 건강을 진단하는 방법이 있다. 절할 때 엉덩이가 들리면 골반 근육이 짧고 허리뼈가 앞으로 휘어진 것으로, 허리를 구부릴 때 양 어깨선의 높이가 다르면 척추와 골반이 옆으로 비뚤어진 것으로 진단하는 식이다.

절도 명절이나 제사 때 너댓 번쯤 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108배, 1000배, 3000배까지 올라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요령을 익히지 않은 채 10분만 계속해도 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한다. 100배를 못 넘기고 기진맥진해 바닥에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다보니 ‘절 다이어트’까지 생겼다. 온 몸의 근육과 관절을 사용하기 때문에 스트레칭 효과가 뛰어나고 복근이 단단해지며 하체 라인이 매끈해진다는 원리다. 20분간 108배를 했을 때 100~150㎉ 정도 열량이 소모된다고 한다.

수행방편으로 그동안 700만배를 했다는 청견 스님은 절을 기차게 잘하는 법이란 책에서 엎드릴 때 발가락을 꺾고, 바닥에 고개를 숙일 때는 휘파람 불 듯 숨을 내뱉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야 다른 동작에서도 저절로 알맞은 호흡이 이뤄지게 된다는 거다.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하심(下心)도 필수다. 헛된 자존심이나 이기심, 자기과시, 선입견 따위를 들어내고 마음을 비우는 게 절의 기본 취지이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 초선의원 20여명이 지난 26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대선 패배 사죄 1000배(拜)를 올렸다고 한다. ‘민주당은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며 ‘당과 정치를 바꾸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는 성명서도 냈다. 전국을 돌며 지지자들에게 사죄의 뜻도 전하기로 했다.

“민심 이반을 의식한 정치쇼 아니냐” “뜬금없다” 같은 비아냥도 나온다. 그러나 수십년 만에 찾아온 혹한 속에서 100배도 아니고, 1000배 사죄를 했다니 보통 일은 아니다. 다만 패배 자체에 대한 사죄보다는 치열한 자기반성부터 하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뚜렷한 이념이나 비전 제시 없이 종북세력까지 끌어들여 당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 게 근본적 패인이었다는 걸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 해보는 소리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