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초하루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바티칸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을 나온 일행 8명은 발길을 베드로성당으로 옮겼다. 일행 중 한 사람은 로마가 처음이었으니 이왕이면 다함께 성당에 들어가 볼 요량이었다. ‘천지창조’ 등을 구경하고 나온 터이니, 성당 안에 있을 같은 작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한 번 더 보리라 다짐하면서….

하지만 2시간20분을 서서 기다란 끝에 입장한 성당에 ‘피에타’는 없었다. 세계 최대의 성당 내부는 마침 장막이 벽을 가리고 의자를 벌여 두었기에 ‘피에타’ 근처에는 접근도 불가능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교황 집전 행사에 잘못 들어온 것을 깨닫고 그대로 퇴장하고 말았다. 혹시 교황을 가까이서 알현할 수 있었을지 모르는 기회였지만.

오후 1시40분부터 광장에서 기다린 우리들 앞 전광판에는 4시 기도를 알리는 이탈리아어 공고가 흐르고 있었다. 순시 중인 경찰관에게 물었더니 초청장은 필요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함께 서 있던 어느 수녀가 건네주는 초청장으로 3중 검사를 통과해 겨우 들어간 성당이 그 꼴이었다. 엄청난 관광객 덕에 돈벌이가 대단할 교황청의 오만함이 지나쳤다.

씁쓰레한 채 6일 귀국한 나는 바로 그 ‘피에타’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8일부터 전시됨을 알게 됐다. 3월 말까지 계속될 ‘바티칸박물관전’에 전시된 소장품 73점 가운데 대표적 작품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라는 설명이다.

우리 일행 중 한 부부는 3일에 다시 베드로성당을 찾아가 ‘피에타’를 촬영도 했는데, 8일부터는 바로 그 작품이 서울에서 전시되고 있다니. 퍼뜩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서울의 ‘피에타’는 ‘스페셜 에디션’이라 안내문에 적혀 있다. 미켈란젤로가 1499년 25세에 만든 바로 그 작품이 아니라, 최근 새로 만든 복제품임을 완곡하게 밝히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성모의 슬픔을 대리석에 조각한 ‘피에타’는 얼마 전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의 모티브가 됐다. 아마 한국에서는 이 영화로 더 유명할 듯하다. 숨을 거둔 아들 예수를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를 묘사한 비슷한 작품은 미켈란젤로를 전후해 여럿 만들어졌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말고도 많은 ‘피에타’가 있다. 또 그것이 복제됐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1972년 괴한의 망치 습격으로 마리아의 코와 어깨 등이 파괴된 일도 있으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베드로성당의 ‘피에타’도 1499년의 원형은 아니다. 새로 제작한 복제품이 더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지금 베드로성당의 그 조각은 두꺼운 방탄유리로 덮여 있고, 외부 전시는 60년대 이후 금지됐다.

못지않게 유명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7점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예술품이나 문화재의 복제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할 뿐이다. 전문가들이야 딴 소리를 하겠지만, 나 같은 범인의 눈에는 원작과 복제품이 구별되지 않는다. 복제품이라도 보고 감상할 수 있다면 인터넷으로 사진만 보는 것보다 얼마나 다행인가?

한 자락 더 생각해 보면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명작으로 꼽는 것은 그 시기가 르네상스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로댕의 작품 역시 그 시대의 중요성 덕택이다. 게다가 그 예술가들의 생애가 알려져 있어서 그들의 작품은 더욱 화두가 돼 성가(聲價)를 더해간다. 우리 국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아무리 우리에게는 뛰어나게 보인들 그것을 서양 사람들이 높게 평가할 이치가 없다. 역시 여럿인 반가사유상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도 그 시기가 분명치 못하고, 조각가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정보와 돈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멋대로 상상력을 동원해 예술을 평가하며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 진짜와 가짜의 사이도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마치 예술품의 진짜와 가짜가 희미해지듯, 사람의 진(眞) 역시 판단하기가 더욱 더 어려워져만 간다. 대선이 끝났다. 국민은 선택을 했고 이제 당선인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 다음 5년의 문을 함께 열 인물들을 잘 솎아내길 바란다.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ㆍ과학사 parkstar@unite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