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선과 도이치증권이 파생상품의 200억원대 이익을 놓고 시세조종까지 불사하며 벌였던 ‘6초의 전쟁’. 대한전선과 도이치증권 직원의 형사처벌에 이어 두 회사 간 민사소송으로까지 비화한 이 사건에서 1심 법원은 지난 19일 도이치증권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지상목)는 대한전선이 “도이치증권 직원의 시세조종으로 대한전선이 파생상품 콜옵션을 상실함에 따라 입은 손해 213억여원 중 100억원을 배상하라”고 주장하며 도이치증권과 도이치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날 원고 패소 판결했다.

‘6초의 전쟁’은 2003년 대한전선과 도이치은행 사이 옵션계약으로 촉발됐다. 당시 대한전선은 도이치은행에 한미은행 주식 285만여주를 주당 7930원에 팔되 한미은행 주가가 2003년 6월27일부터 1년 동안 행사가격의 2배 수준인 1만5784원 미만이면 원래 가격대로 되살 수 있는 콜옵션 계약을 했다.

대신 같은 기간 내 주가(종가)가 하루라도 1만5784원 이상이 되면 대한전선은 콜옵션 행사를 할 수 없다는 단서가 있었다. 주가가 1년 동안 기준가(1만5784원) 미만이 유지되면 대한전선은 한미은행 주식 285만주를 7930원에 되살 수 있다.

이 경우 2004년 당시 1만5000원대 주식을 절반 수준에 매입하게 돼 200억원대의 이익을 보는 구조다. 반면 주가가 기준가를 넘어서면 도이치은행이 200억원대의 이익을 보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콜옵션 계약에 따라 대한전선의 콜옵션 행사가 이뤄지게 될 경우 입게 될 200억원대의 손실을 보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계획이 알려지면서 한미은행 주가는 2004년 2월19일 장 마감 15분 전 1만5750원까지 뛰어올랐다. 이에 계약을 관리하던 도이치증권 직원은 한미은행 주식 16만주를 계약 주가 이상인 1만5800원에 사겠다는 주문을 냈다. 그러자 대한전선 역시 매도주문으로 반격에 나서 가격을 1만5300원으로 낮췄다. 하지만 6초 후 도이치증권이 93만주를 주당 1만5800원에 매수주문을 내면서 결국 종가는 1만5800원으로 마감됐고, 대한전선의 콜옵션은 사라져 손해를 보게 됐다.

시세조종을 한 도이치증권과 대한전선의 직원은 지난 11월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시세조종과 관계없이 계약기간 중 한미은행 주가가 1만5784원 이상으로 뛰어올랐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어차피 대한전선의 콜옵션 행사 기회는 사라졌을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대한전선이 콜옵션을 행사하려면 2004년 6월28일까지 한미은행 주식 종가가 내내 1만5784원 미만이었어야 하는데 도이치증권의 시세조종이 있던 다음날인 2004년 2월20일에도 종가가 1만5800원 이상이었다”며 “시세조종이 없었더라도 2월20일 대한전선의 콜옵션은 상실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 콜옵션

특정 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하며 풋옵션(put option)과 상반된 개념. 현재가격이 행사가격보다 높을 경우 콜옵션 매수자는 권리를 행사해 그 차액을 이익으로 얻을 수 있다. 현재가격이 행사가격보다 낮을 때에는 옵션을 살 때 낸 옵션가격만큼 손실을 입고 권리행사를 포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