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모든 것은 다 저의 부족함 때문이다.” 대선 승패가 사실상 갈라진 19일 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이렇게 패배를 받아들이는 어려운 연설을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박 당선인이 국민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펴줄 것을 기대한다. 국민께서도 이제 박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비록 선거에서 졌지만 모두 자신 탓으로 돌리고 깨끗이 결과에 승복한 모습이다.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다.

어떻든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의 정권교체 염원은 물거품으로 끝났다. 안철수의 지지선언과 지원유세로 뒤집기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큰 표차로 졌다. 패인은 무엇일까. 민주당은 지금도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MB정부 5년을 돌아보면 ‘747’ 공약은 실천은 고사하고 경제는 악화일로였다. 청년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고 조기 퇴직한 베이비부머의 재취업 문제도 만만치 않다고 봤을 것이다. 가계부채는 늘어만 가고 집값은 바닥 없이 추락 중이다. 양극화는 심해졌고 중소기업은 죽겠다고 난리다. 그 와중에 청와대 친인척 비리마저 계속 터져 나왔다. 정권 교체는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총선에 이은 대선 패배였다. 왜 그랬을까.

우선 국방 외교 안보 분야에서 민주당은 믿음을 주지 못했다. 4·11 총선 때 야권연대 운운하며 정책도 이념도 전혀 다른 종북세력들과 손을 잡았다. 결과적으로 종북 좌파들에게 국회 진출 길만 터주고 선거에서는 패배했다. 비록 공식적 연대는 없었다지만 이번에도 종북 세력과 명확하게 선을 긋지 못했다. 특히 천안함 폭침을 ‘침몰’로 표기한 것이나 북방한계선(NLL) 관련 의혹에 대해 문 후보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 등이 보수 국민들을 대거 투표소로 몰리게 했다. 물론 외연 확장을 위해 연대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부분이 ‘민주당, 곧 안보를 맡길 수 없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마침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댔다.

대한민국의 현대사 가운데 민주화만 부각시키고 산업화를 부정한 반쪽 역사관도 패인이었다. 지금 한국을 만든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쌍두마차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산업화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고 또 그 성과를 부인해왔다. 결국 민주당은 70년대 반독재 투쟁이나 하던 수구세력처럼 비치고 말았다. 독재 정권의 특혜를 받은 재벌이 부를 독점하고 그것이 지금까지 양극화를 조장한다는 식의 왜곡된 경제관만 선전해댔다. 민주당의 이런 오도된 역사관은 산업화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중장년층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번 대선에서 박 당선인에게 표를 몰아준 50대와 60대 이상 연령층의 투표율이 각각 89.9%, 78.8%로 전국 투표율(75.8%)을 크게 웃돈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민주당만의 비전이나 이념을 제시하지 못한 것 역시 취약한 부분이었다. 문 후보가 당선될 경우 단순히 친노로 회귀한다는 것 외에 무엇이 달라지는지 설명이 없었다. 오히려 제주해군기지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노무현 정책까지 부인하는 극좌노선만 부각됐을 뿐이다. 이념이 없다보니 연대와 단일화라는 정치공학에만 매달리게 된 것이다. 이제 민주당에는 5년이라는 재정비 기간이 주어졌다. 민주당은 극좌노선의 패배를 제대로 해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