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 특별 사설] 대한민국 4.0…4만달러 국가시스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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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닻을 올린 1948년 이래 지난 60여년은 국가로서 성년이 돼 가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출발부터 혹독한 전쟁의 폐허였다. 맨땅에 맨몸과 빈주먹이었다. 1950년대 1인당 소득은 고작 60~70달러로 더 가난한 나라를 찾기 힘들었다. 정변과 헌정 중단 사태가 잇따랐다. 민주주의는 쓰레기통 장미라고 외신들은 비아냥댔다.
그로부터 두 세대가 지났다. 4·19, 5·16, 5·18 등 현대사의 질곡도 있었다. 그러나 절차에서의 민주화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선거에서 부정과 폭력은 먼 옛날 얘기가 됐다. 또한 기적 같은 산업화로 2차대전 후 가장 팔자 고친 나라로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던 국민이 지금은 비만을 염려한다. 원조로 연명하던 나라가 세계 최초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했다. 산업 강국이자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당당히 G20(주요 20개국) 반열에도 올랐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더 큰 도약을 위한 그 다음 비전이 전혀 없다. 오히려 민주주의 미명 아래 갈등, 대립, 욕설의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정치는 비전이 아니라 대중에게 아부하기 바쁘다. 올해 총선과 대선은 반값과 공짜의 뇌물이 넘쳐났다. 대중민주주의의 전형적인 민낯이었다. 법은 국회의 대량생산 제품으로 전락했다. 온갖 이익집단과 정치세력이 민주주의를 내걸고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소득이 2만달러로 늘어난 만큼 졸부 근성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강성 노조와 관료, 전문직의 기득권은 여전히 강고하다. 몸집이 커진 만큼 인식이 따라오지 못하는 심각한 정신의 지체 상태다.
이렇듯 낡디 낡은 ‘87체제’의 해질녘은 어지럽기 그지 없다. 새로운 시대정신은 다수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고 사려 깊은 역사적 인식과 심각한 고뇌가 뒷받침돼야 시대정신이 태어난다. 표에 목을 맨 경제민주화, 무상복지 식의 정치 슬로건으로 땜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증오·분노 가라앉히는 선진국형 '아비투스'를…
이번 18대 대선에서 한국인은 ‘정권교체’가 아닌 ‘시대교체’를 택했다. 갈등과 반목의 87체제를 탈피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에 스스로 대면한 것이다.
산업화 25년, 민주화 25년이 지났다. 한국경제신문은 이제 ‘대한민국 4.0’을 제안한다. 2만달러 덫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가려면 국민소득 4만달러에 걸맞은 아비투스를 갖춰야 한다. 대한민국 4.0 시대는 곧 ‘숙의(熟議) 민주주의’다.
대한민국 4.0을 움직이는 동인(動因)은 길거리의 큰 목소리가 아닌 합리적 시민의식이다. 또한 법치는 대량으로 찍어낸 법이 아니라 자유 인권 정의 등 자연법적 질서에 의해 구현돼야 한다. 그 어떤 선진국도 이 같은 숙의 민주주의 단계에 이르지 않은 채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경우는 없다.
당연히 자유시장경제가 기본적인 질서를 구성한다. 대한민국 4.0 시대에는 광장의 먼지와 소음부터 가라앉혀야 한다. 내가 외칠 자유가 타인의 듣지 않을 권리와 충돌할 때 자제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가 내 삶을 바꿔줄 것이라는 환상부터 깨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치권력의 축소를 요구한다.
대한민국 4.0을 말하기까지 지난 60여년을 돌이켜보면 실로 지난(至難)한 과정이었다. 1948년 이승만 정부의 건국부터 1960년 4·19까지는 근대 민주정을 도입한 대한민국 1.0 시대다. 1961년 5·16 이후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개발독재로 산업화를 통한 물적 토대를 이뤄낸 시기를 대한민국 2.0으로 규정할 수 있다. 대한민국 3.0은 1987년 6·29 선언 이후 직접선거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소위 87체제에서는 한껏 고양된 대중주의와 집단주의가 급기야 모든 민주적 가치를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수의 이름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소수를 공격해도 괜찮다는 대중의 횡포가 드러났다.
국민들 누구나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이것이 정권교체보다는 시대교체에 더 공감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18대 대선을 계기로 대한민국 3.0도 수명을 다했다. 소위 ‘좌빨’과 ‘꼴보’의 큰 목소리 투쟁도 동시에 끝나야 한다. 87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것은 차기 대통령의 숙명적인 과제다. 국민은 그런 리더십을 요구한 것이다.
대선은 끝났다. 박근혜 당선인은 여러 면에서 전임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어드밴티지를 안고 출발대에 서게 됐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1577만표라는 사상 최다 득표, 1987년 직선제 이후 첫 과반 득표, 호남에서 보수정당 후보로 첫 10% 이상 득표…. 선거에서 치열하게 싸운 문재인 후보가 깨끗이 승복하고 당선을 축하해준 것은 선거 민주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제도로서 완성시킬 수 있다.
이런 토대가 있기에 대한민국을 4.0으로 업그레이드할 절호의 기회다. 박 당선인의 선거 승자로서의 기쁨은 하루면 족하다. 이제 국민소득 4만달러에 부합하는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만들어 가자.
■ 아비투스
Habitus. 영어로 habit(습관)을 뜻하며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했다. 사회구조 속에서 구성원들 간에 형성된 인식, 기질, 삶의 방식 등의 성향체계, 행동양식을 포괄하는 개념. 사회적으로 구조화되는 원칙인 동시에 개인의 사회화 과정을 설명한다.
그로부터 두 세대가 지났다. 4·19, 5·16, 5·18 등 현대사의 질곡도 있었다. 그러나 절차에서의 민주화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선거에서 부정과 폭력은 먼 옛날 얘기가 됐다. 또한 기적 같은 산업화로 2차대전 후 가장 팔자 고친 나라로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던 국민이 지금은 비만을 염려한다. 원조로 연명하던 나라가 세계 최초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했다. 산업 강국이자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당당히 G20(주요 20개국) 반열에도 올랐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더 큰 도약을 위한 그 다음 비전이 전혀 없다. 오히려 민주주의 미명 아래 갈등, 대립, 욕설의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정치는 비전이 아니라 대중에게 아부하기 바쁘다. 올해 총선과 대선은 반값과 공짜의 뇌물이 넘쳐났다. 대중민주주의의 전형적인 민낯이었다. 법은 국회의 대량생산 제품으로 전락했다. 온갖 이익집단과 정치세력이 민주주의를 내걸고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소득이 2만달러로 늘어난 만큼 졸부 근성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강성 노조와 관료, 전문직의 기득권은 여전히 강고하다. 몸집이 커진 만큼 인식이 따라오지 못하는 심각한 정신의 지체 상태다.
이렇듯 낡디 낡은 ‘87체제’의 해질녘은 어지럽기 그지 없다. 새로운 시대정신은 다수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고 사려 깊은 역사적 인식과 심각한 고뇌가 뒷받침돼야 시대정신이 태어난다. 표에 목을 맨 경제민주화, 무상복지 식의 정치 슬로건으로 땜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증오·분노 가라앉히는 선진국형 '아비투스'를…
이번 18대 대선에서 한국인은 ‘정권교체’가 아닌 ‘시대교체’를 택했다. 갈등과 반목의 87체제를 탈피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에 스스로 대면한 것이다.
산업화 25년, 민주화 25년이 지났다. 한국경제신문은 이제 ‘대한민국 4.0’을 제안한다. 2만달러 덫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가려면 국민소득 4만달러에 걸맞은 아비투스를 갖춰야 한다. 대한민국 4.0 시대는 곧 ‘숙의(熟議) 민주주의’다.
대한민국 4.0을 움직이는 동인(動因)은 길거리의 큰 목소리가 아닌 합리적 시민의식이다. 또한 법치는 대량으로 찍어낸 법이 아니라 자유 인권 정의 등 자연법적 질서에 의해 구현돼야 한다. 그 어떤 선진국도 이 같은 숙의 민주주의 단계에 이르지 않은 채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경우는 없다.
당연히 자유시장경제가 기본적인 질서를 구성한다. 대한민국 4.0 시대에는 광장의 먼지와 소음부터 가라앉혀야 한다. 내가 외칠 자유가 타인의 듣지 않을 권리와 충돌할 때 자제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가 내 삶을 바꿔줄 것이라는 환상부터 깨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치권력의 축소를 요구한다.
대한민국 4.0을 말하기까지 지난 60여년을 돌이켜보면 실로 지난(至難)한 과정이었다. 1948년 이승만 정부의 건국부터 1960년 4·19까지는 근대 민주정을 도입한 대한민국 1.0 시대다. 1961년 5·16 이후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개발독재로 산업화를 통한 물적 토대를 이뤄낸 시기를 대한민국 2.0으로 규정할 수 있다. 대한민국 3.0은 1987년 6·29 선언 이후 직접선거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소위 87체제에서는 한껏 고양된 대중주의와 집단주의가 급기야 모든 민주적 가치를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수의 이름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소수를 공격해도 괜찮다는 대중의 횡포가 드러났다.
국민들 누구나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이것이 정권교체보다는 시대교체에 더 공감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18대 대선을 계기로 대한민국 3.0도 수명을 다했다. 소위 ‘좌빨’과 ‘꼴보’의 큰 목소리 투쟁도 동시에 끝나야 한다. 87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것은 차기 대통령의 숙명적인 과제다. 국민은 그런 리더십을 요구한 것이다.
대선은 끝났다. 박근혜 당선인은 여러 면에서 전임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어드밴티지를 안고 출발대에 서게 됐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1577만표라는 사상 최다 득표, 1987년 직선제 이후 첫 과반 득표, 호남에서 보수정당 후보로 첫 10% 이상 득표…. 선거에서 치열하게 싸운 문재인 후보가 깨끗이 승복하고 당선을 축하해준 것은 선거 민주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제도로서 완성시킬 수 있다.
이런 토대가 있기에 대한민국을 4.0으로 업그레이드할 절호의 기회다. 박 당선인의 선거 승자로서의 기쁨은 하루면 족하다. 이제 국민소득 4만달러에 부합하는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만들어 가자.
■ 아비투스
Habitus. 영어로 habit(습관)을 뜻하며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했다. 사회구조 속에서 구성원들 간에 형성된 인식, 기질, 삶의 방식 등의 성향체계, 행동양식을 포괄하는 개념. 사회적으로 구조화되는 원칙인 동시에 개인의 사회화 과정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