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정권교체’보다 ‘시대교체’를 택했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 속의 점진적 변화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작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한 뒤 당시 한나라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일찌감치 등판했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쇄신 작업을 벌여 올 4·11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점하며 대권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하지만 과거사 인식 논란과 이명박 정권 심판론이 부상하면서 대세론이 서서히 무너졌다. 특히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새정치 바람을 일으키며 정치권에 발을 담그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박 당선자는 화두를 잇따라 선점하며 판세를 장악해 나갔다.

그 시발점이 ‘100% 대한민국’이었다. 박 당선자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다음날 바로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우리나라 민주화를 이루는 데 주도한 세력으로 평가받는 동교동계 핵심인 한광옥 전 평화민주당 대표를 영입해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겼다.

이를 통해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등장으로 떠오른 정치쇄신에 대한 국민의 열망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검찰청 중수부장을 맡고 대법관을 역임한 안대희 씨를 영입,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앉히고 정치쇄신 공약을 주도해 갔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시대 화두도 선점했다. 우리나라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여겨지는 119조2항을 주도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작년 비대위 체제부터 영입해 이슈에 대한 주도권을 잡았다.

글로벌 경제위기도 한몫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진 상황에서 성장론을 맨 먼저 들고 나온 것도 박 당선자였다. 여기에 ‘여성 대통령론’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공 전략인 ‘준비된 대통령’을 더해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부각시킴으로써 중도와 여성층을 끌어안았다.

이런 전략의 저변에는 민생정치가 자리하고 있다. 정쟁에 따른 정치 혐오로 가득찬 국민을 끌어안는다는 전략에 따라 박 당선자는 ‘민생’을 내세웠다. 차기 정권의 이름도 민생정부라고 지어 전국 유세 현장마다 이를 강조했다. 박 후보 캠프 핵심 관계자는 “이런 전략은 당 참모진의 보고보다 박 당선자가 직접 만들어냈다”고 했다.

현 정권과의 차별화와 노무현 정부 실정론도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는 데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이명박 정권 심판론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여당 속 야당’의 스탠스를 취해왔고 대선전에서 노무현 정부 실정론으로 맞서면서 공세를 차단했다.

반면 야권은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과정이 순탄치 않아 ‘아름다운 동행’으로 가기에는 부족했고, 막판 안 전 후보의 지원도 민주당의 기대보다 적극적이지 않은 채 피로감만 쌓여 안 전 후보에게 쏠렸던 수도권 지지를 유인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 당선자의 승리는 후보 개인의 역량과 야권의 전략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민주통합당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라는 호재를 살리려는 전술이 부족했고, ‘문재인’이라는 브랜드조차 유권자들에게 강하게 인식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