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커피에 밀려…35년 '커피 자판기' 몰락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인사이드 Story - 3년새 절반 사라진 '동전 커피'
커피전문점·편의점 급증
해마다 2만개씩 퇴출
대당 매출 10년새 반토막
커피전문점·편의점 급증
해마다 2만개씩 퇴출
대당 매출 10년새 반토막
17일 서울 서강대 도서관 앞. 커피자판기 바로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는 종이컵보다 테이크아웃 컵과 커피음료 빈병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직선거리로 불과 50m 떨어진 곳에 있는 커피빈과 GS25에서 판매된 상품들이다. 복학생 김진영 씨는 “5~6년 전에는 자판기 커피를 자주 뽑아 먹었지만 요즘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먹다보니 자판기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단돈 200원 정도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공간이었던 커피자판기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커피전문점과 편의점이 빠르게 늘어나 도심 어디에서나 고급 커피를 손쉽게 마실 수 있게 되면서 자판기를 찾는 소비자들이 줄고 있는 탓이다.
한국자동판매기운영업협동조합(한국자판조합)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커피자판기는 2008년 말 10만9214개에서 지난해 말 5만1782개로 급감했다. 해마다 2만개꼴로 감소, 불과 3년 새 반토막이 난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감소폭이 워낙 컸던 만큼 지금도 약 5만개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배영식 한국자판조합 이사장은 “자판기 전성기였던 10년 전에는 40만개 정도에 달했지만 숫자도 줄어들고 대당 매출도 (10년 새) 평균 50% 감소했다”며 “영세한 조합원들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10여대의 자판기를 운영하는 A씨는 “사업을 시작한 2005년만 해도 자판기 한 대당 매일 수십잔씩을 팔았지만 요즘은 하루 10잔 팔기도 힘들다”며 “업종을 쉽게 접을 수도 없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국내에 커피자판기가 처음 등장한 건 1977년. 당시 롯데산업(롯데상사의 전신)이 일본 샤프에서 400대를 도입해 설치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빠르게 늘어난 커피자판기는 1990년대 중반에는 대기업들이 제조사업에 앞다퉈 진출할 정도로 ‘황금알’ 사업으로 통했다. 연간 신규 출고 대수도 2000년대 초반 2만대를 넘었으나 지난해엔 2500개로 뚝 떨어졌다.
커피업계에선 ‘자판기 실종’의 원인을 커피전문점과 편의점의 급속한 증가에서 찾고 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최근 커피시장의 성장을 주도한 제품은 원두커피와 커피음료”라며 “자판기용으로 납품하는 분말커피 매출도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상태”라고 전했다.
매출은 줄었지만 자판기에 붙는 권리금은 떨어지지 않아 신규 창업자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나 역 주변 같은 ‘특A급 상권’에선 권리금만 5000만~1억원을 넘나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태규 한국자판조합 관리부장은 “대형 음료업체들이 자판기를 직접 설치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지다보니 영세 사업자들이 입찰 자체를 할 수 없는 환경이 됐다”며 “자판기를 전문으로 관리하는 중견 사업체도 수도권에 고작 서너 곳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조합은 자판기사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동반성장위원회에 신청한 상태다.
자판기 창업컨설팅업계 관계자는 “자판기사업이 2000년대 후반부터 침체기에 접어들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멀티 자판기’ 같은 대체 아이템도 등장하고 있지만 소비자 반응은 미지근한 편”이라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