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인이 말하는 '사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국민 들먹이지만 뜻 분명치않아…사상 따라 달리 쓰는 경우 많아
진영논리의 '모호한 말' 경계를
류동길 <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yoodk99@hanmail.net >
진영논리의 '모호한 말' 경계를
류동길 <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yoodk99@hanmail.net >
대선후보의 슬로건은 단순명료해야 한다. 후보의 생각과 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각인시켜야 유권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 사람들은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는 미국 대통령 후보 빌 클린턴이 재미를 본 성공한 슬로건이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준비된 여성대통령’,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사람이 먼저다’를 내세웠다. 박 후보는 오래 전부터 대통령 꿈을 꾸어왔다고 하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지는 않다. 문 후보의 슬로건은 어떤가. 문 후보 캠프의 설명은 말 그대로 사람을 맨 앞에 두겠다는 뜻이라며 홍익인간과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먼저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가슴에 닿지 않는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건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사람을 평가할 때나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학벌 등 조건보다 사람 됨됨이를 보아야 한다고 흔히 말한다.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박경리의 ‘사람의 됨됨이’라는 글의 일부다.
“나는 투자를 했지만 너는 투기를 했다”거나 “내가 한 것은 로맨스, 네가 한 것은 스캔들”이라는 말은 같은 사실을 두고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경우다. 흔히 정치인들은 자신의 주장을 국민의 뜻이라고 한다. 자신의 뜻이라고 말해야 하는 데도 괜히 국민을 팔고 국민을 들먹인다. 그런 경우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많은 국민은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에서 빠지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함부로 국민이라는 단어를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미 알려져 있는 단어의 뜻이 달리 해석된다면 어떨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우리가 쓰는 애인(愛人)이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결혼한 부부를 서로 부를 때 사용한다. 우리의 애인에 해당하는 중국말은 정인(情人)이다. 한국과 중국의 말뜻이 다른 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같은 말을 쓰는 남북한의 말뜻이 전혀 다른 경우다. 우리가 즐겨먹는 오징어는 북한에서는 낙지, 낙지는 오징어로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오징어를 주문했는데 낙지가 나온다면 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이라는 말뜻도 남북이 다르다. 북한이 1991년에 펴낸 ‘조선말사전’에는 “민주주의란 근로인민대중, 즉 사람의 의사를 집대성하는 정치제도”라고 돼 있다. 북한에서 사람이란 근로인민대중, 즉 가진 것이 없는 무산계급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 헌법을 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을 갖는 국가(헌법 제3조), 사회제도는 근로인민대중을 위해 복무하는 ‘사람중심’의 제도(제8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람의 사전적 정의는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며 사회를 이뤄 사는 동물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쓰는 사람이라는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니!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근로인민대중이 아닌 자는 사람이 아니란 말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인본주의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의 소중함은 더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문 후보는 “이념, 성공, 권력, 개발, 성장, 집안, 학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며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1월 민주통합당의 경선에서 뽑힌 한명숙 대표는 “정의롭고 사람이 사는 사회”라는 표현을 썼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5월 노동절에 축사를 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역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일찍이 ‘사람 사는 세상’을 내세웠다. 모두 사람을 강조하고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사람을 중하게 여기고 사람을 우선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다. 그런데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라는 말이 있듯이 모두가 강조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를 말함인가. 모든 국민인가, 아니면 진영논리에 치우친 일부 국민인가.
류동길 <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yoodk99@hanmail.net >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준비된 여성대통령’,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사람이 먼저다’를 내세웠다. 박 후보는 오래 전부터 대통령 꿈을 꾸어왔다고 하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지는 않다. 문 후보의 슬로건은 어떤가. 문 후보 캠프의 설명은 말 그대로 사람을 맨 앞에 두겠다는 뜻이라며 홍익인간과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먼저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가슴에 닿지 않는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건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사람을 평가할 때나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학벌 등 조건보다 사람 됨됨이를 보아야 한다고 흔히 말한다.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박경리의 ‘사람의 됨됨이’라는 글의 일부다.
“나는 투자를 했지만 너는 투기를 했다”거나 “내가 한 것은 로맨스, 네가 한 것은 스캔들”이라는 말은 같은 사실을 두고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경우다. 흔히 정치인들은 자신의 주장을 국민의 뜻이라고 한다. 자신의 뜻이라고 말해야 하는 데도 괜히 국민을 팔고 국민을 들먹인다. 그런 경우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많은 국민은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에서 빠지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함부로 국민이라는 단어를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미 알려져 있는 단어의 뜻이 달리 해석된다면 어떨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우리가 쓰는 애인(愛人)이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결혼한 부부를 서로 부를 때 사용한다. 우리의 애인에 해당하는 중국말은 정인(情人)이다. 한국과 중국의 말뜻이 다른 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같은 말을 쓰는 남북한의 말뜻이 전혀 다른 경우다. 우리가 즐겨먹는 오징어는 북한에서는 낙지, 낙지는 오징어로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오징어를 주문했는데 낙지가 나온다면 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이라는 말뜻도 남북이 다르다. 북한이 1991년에 펴낸 ‘조선말사전’에는 “민주주의란 근로인민대중, 즉 사람의 의사를 집대성하는 정치제도”라고 돼 있다. 북한에서 사람이란 근로인민대중, 즉 가진 것이 없는 무산계급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 헌법을 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을 갖는 국가(헌법 제3조), 사회제도는 근로인민대중을 위해 복무하는 ‘사람중심’의 제도(제8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람의 사전적 정의는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며 사회를 이뤄 사는 동물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쓰는 사람이라는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니!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근로인민대중이 아닌 자는 사람이 아니란 말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인본주의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의 소중함은 더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문 후보는 “이념, 성공, 권력, 개발, 성장, 집안, 학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며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1월 민주통합당의 경선에서 뽑힌 한명숙 대표는 “정의롭고 사람이 사는 사회”라는 표현을 썼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5월 노동절에 축사를 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역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일찍이 ‘사람 사는 세상’을 내세웠다. 모두 사람을 강조하고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사람을 중하게 여기고 사람을 우선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다. 그런데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라는 말이 있듯이 모두가 강조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를 말함인가. 모든 국민인가, 아니면 진영논리에 치우친 일부 국민인가.
류동길 <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yoodk9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