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201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EU가 유럽에 민주주의를 성장시키고, 평화유지에 큰 몫을 담당했다는 게 선정 이유다. 하지만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극심한 재정난을 겪는 각국에서 연일 항의시위가 이어지고, 시상식장 밖에서도 EU의 수상을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투투 주교 등 역대 노벨상 수상자 3명도 노벨위원회에 공개서한을 보내 EU가 평화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재정위기로 남·북유럽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최악의 노벨평화상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영예로워야 할 노벨상에 흠집이 난 셈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엄정한 심사가 이뤄지지 못한 까닭일까.

연말을 맞아 우리 연극계에서도 김상렬연극상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예술인상, 히서연극상, 김동훈연극상의 수상자가 잇달아 발표됐다. 그리고 연극인들은 수상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올 한 해뿐만 아니라 그간의 활동으로 상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공감 때문이다. 품격을 지닌 한국적 코미디로 관객에게 연극의 재미를 확인시켜온 김태용, ‘고곤의 선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출연작마다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 김소희, 사회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개인의 삶의 태도를 질문하는 김광보, ‘그을린 사랑’ ‘꿈’ 등에서 중량감 있는 연기로 무대 완성도를 높여준 남명렬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모든 연극상 상금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노벨문학상, 영국의 부커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공쿠르상도 상금이 고작 10유로라고 한다. 다만 수상작으로 선정되면 프랑스에서 최소한 수십만부가 팔릴 만큼 파급력이 크다고 한다. 한국에서 연극상을 수상한다고 해서 연출료나 출연료가 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해랑연극상, 차범석희곡상을 비롯한 대부분의 연극상이 한국 연극 발전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연극인과 가족이 후배 연극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상들이기에 연극상 수상자들에게는 평론가의 호평이나 관객의 갈채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2012년 한국 연극계를 돌아보면 작품 수는 많은데 괄목할 만한 작품이 적어 외화내빈이라는 인색한 평가도 있지만, 대학로를 중심으로 국립극단, 연강홀, 남산창작센터, 엘지아트센터 등에서 이뤄진 다양한 시도들로 어느 해보다도 한국 연극은 풍성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특히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시리즈는 작품 소재의 보고로서 삼국유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주었고, 남산창작센터의 창작극 인큐베이팅 작업은 연극의 미래를 위해 누군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게릴라극장, 혜화동1번지 등 소극장에서 이뤄진 중견과 신진 연출가들에 의한 도전과 실험에 대한 조명도 보다 꼼꼼하게 이뤄져야 한다. 비록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이지는 않더라도 한국 연극 내일의 주역들을 위한 별도의 연극상도 새롭게 제정되기를 기대한다. 패기발랄한 신진기예들이 자신감을 갖고 연극에 일생을 거는 자극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구자흥 < 명동예술극장장 koo.jahu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