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적외선차단(IR) 필터를 만드는 나노스(사장 이해진).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증설할 지역을 다각도로 고심한 끝에 필리핀에 신규 법인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중국 옌타이와 톈진에 있는 기존 공장을 확장하기엔 급등하고 있는 현지 인건비가 부담스러워서다. 회사 관계자는 “더 이상 중국의 메리트를 기대하기 힘들어 필리핀에 새 공장을 짓고 이달 본격 양산에 들어갔다”며 “중국은 현 상태만 유지하고 추가 투자는 모두 필리핀에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이 한국 중견중소기업의 새로운 해외 전진기지로 각광받고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나노스처럼 필리핀에 신규 법인을 설립한 한국 기업 수는 2009년 69개, 2010년 74개, 2011년 82개 등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 가운데 베트남(197개), 인도네시아(156개)에 이어 세 번째다.

올해에도 누리안인터내셔날(섬유), 아이엠(전자), 코렌(전자) 등이 잇따라 필리핀에 진출하면서 1분기 신규 법인 수는 전년 동기 19개에서 22개로 증가했다. 지난달 말에는 국내 대기업을 따라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 20여곳이 사절단을 꾸려 필리핀을 다녀갔다.

필리핀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이 늘고 있는 이유는 돈문제가 첫째다. 필리핀 현지인 평균 임금은 월 약 300달러로 중국의 절반 수준이다. 또 주 6일 근무제가 시행되고 있어 특별수당 없이 주말근무가 가능하고 영어가 통용되는 것도 의사소통에 도움이 된다.

사절단 관계자는 “중국의 월평균 임금을 100으로 보면 필리핀은 50 안팎”이라며 “중국에 비해서는 인건비가, 베트남 대비로는 전력, 도로 등 인프라가 매력적이라 진출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은갑 필리핀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진출을 문의하는 중소기업이 잇따르고 있는데 중국에 사업장이 있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언어 인프라 종교 등 다방면에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뿐만 아니다. 그는 “최근 일본 기업들의 필리핀 진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필리핀 정부도 외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자유경제무역지대(PEZA) 역내 기업에 평생 무관세 통관을 보장하거나 법인세(4년)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자체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서다.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에서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서다. 수출입은행은 2011년 중국의 최저 임금이 전국적으로 평균 22% 올랐고 2015년까지 연평균 13%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에 신규 법인을 세운 한국 기업 수가 올해 3분기까지 전년 634개 대비 16% 감소한 533개를 기록한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는 분석이다.

오동윤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건비를 목표로 중국에 나가는 기업은 눈에 띄게 줄고 있는 반면 필리핀 등 아세안이 뜨고 있다”며 “중국은 이제 ‘공장’이 아닌 ‘시장’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