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중국에 있는 일부 제조시설을 미국으로 옮겨 올 계획이다.”

애플이 미국 대기업들의 ‘리쇼어링(reshoring)’ 바람에 동참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에서 고용을 창출할 책임이 있다”며 “내년에 1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맥(Mac)컴퓨터 생산시설을 짓겠다”고 밝혔다. 현재 애플은 맥컴퓨터를 대부분 중국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리쇼어링이란 ‘아웃소싱(outsourcing)’의 반대 개념이다. 값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옮겨 갔던 제조시설을 미국 땅으로 다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뜻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 캐터필러 등 미국 대기업들은 최근 미국 내 공장 신설 계획을 속속 밝혀왔다. 8%에 육박하는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데 동참해야 한다는 정치적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중국 내 인건비가 오르고 작년 일본 대지진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도 불안해지면서 ‘제조는 무조건 아시아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날 찾은 뉴욕주 북부의 스케넥터디. 이곳에는 지은 지 100년은 족히 됐을 것 같은 빨간색 벽돌 건물이 있다. 옥상에 걸린 GE 사명이 고전적으로 느껴진다. GE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한 공장 건물 몇 채를 지나자 유리와 철골로 지어진 매끈한 현대식 건물이 눈에 띄었다. 지난 7월 완공된 차세대 배터리 공장이다.

“중국이요? 부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단 한번도 고려한 적이 없어요.” GE 에너지저장사업부의 프레스콧 로건 대표는 ‘왜 제조기지로 중국을 선택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GE의 역사가 시작된 곳에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1890년 맨해튼에 있던 에디슨 기계제작소 공장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발전기 제조업체인 에디슨 기계제작소는 에디슨이 세운 다른 전기 회사들과 ‘에디슨 제너럴일렉트릭’으로 합병됐고, 이후 스케넥터디는 GE 전자·화학 사업의 연구 및 제조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GE는 약 10년 전부터 이곳 글로벌리서치센터에서 니켈과 나트륨으로 구성된 차세대 배터리 ‘듀라톤’을 개발해왔다. 기존 납축전지에 비해 부피는 절반에 불과하지만 수명이 10배나 오래 가는 데다 섭씨 -20도에서 60도까지 견딜 수 있어 극한의 환경에 적합한 배터리다. 아프리카의 송전탑, 선진국의 풍력발전기, 광산용 자동차 등에 쓰인다. GE는 개발 과정에서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2009년 스케넥터디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7월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완공식을 가졌다.

로건 대표는 “다소 비싼 인건비는 큰 고려사항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자동화 공정을 많이 적용한 데다 최첨단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 임금을 좀 더 주더라도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 이 공장은 가동률을 100%로 높이면 총 450명을 고용하게 된다.

로건 대표는 “무엇보다 듀라톤 배터리 기술이 시작된 글로벌리서치센터와 가까운 곳에 공장을 짓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빠르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개발을 주도한 글렌 머펠드 연구원은 “내 사무실은 글로벌리서치센터에 있지만 1주일에 2~3일은 공장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기관차 엔진, 광업용 자동차 등 GE의 다른 사업부를 고객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도 공장 부지로 스케넥터디를 선택한 이유다. 머펠드 연구원은 “GE의 타사업부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고객”이라며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고객의 욕구를 빠르게 이해하고 제품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GE의 새 듀라톤 배터리 공장은 미국 대기업들 사이에 불고 있는 ‘리쇼어링’ 바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조기지를 미국으로 옮겨 오는 기업은 GE와 애플뿐만이 아니다. 가전업체 월풀은 중국 광저우의 협력업체에서 생산하던 믹서기 제조라인을 작년 9월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로 옮겨 왔다.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오티스도 멕시코의 일부 제조시설을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이전했다. 밀워키의 자물쇠 제조업체 마스터록은 리쇼어링의 모범사례로 뽑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올초 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비영리단체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의 해리 모서 회장은 “최근 몇 년간 최소 2만5000개의 일자리가 리쇼어링을 통해 새로 생겼다”면서 “수백만명의 실업자를 감안하면 아직 미미한 숫자지만 기업들이 아웃소싱의 비용과 효과를 다시 생각하고 있어 앞으로 리쇼어링이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중국에서 생산하는 게 무조건 싸다는 생각이 바뀌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인건비 하락, 천연가스 생산량 증가 등에 힘입어 2015년에는 미국의 평균 제조비용이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 비해 15~21% 싸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제조비용은 여전히 미국에 비해 7% 낮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는 물류, 관세 등 다른 비용을 제외한 수치다. 중국에 있던 공장들을 갑자기 모두 유턴시킬 정도는 아니지만 더 이상 중국이 ‘무조건적 선택지’는 아니라는 얘기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