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에서 TV토론은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우리나라에서 TV토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7년 15대 대선부터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군중집회와 대중연설을 중심으로 선거가 치러졌다. 당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후보의 3파전으로 진행된 세 차례의 합동토론회에서 달변인 김대중 후보는 매번 1%포인트가량 지지율이 오르는 효과를 누렸다. 이인제 후보도 3%포인트 정도 상승했다. 반면 이회창 후보는 0.7~3%포인트가량 지지율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후보는 TV토론에서 ‘준비된 대통령’ 이미지를 구축하며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TV토론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세 차례에 걸친 토론회를 시청했다는 응답이 모두 70%를 넘었다. 특히 제3후보였던 권영길 후보가 가장 큰 혜택을 봤다. 합동토론에서 권 후보는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방송 직후 최대 10%포인트 지지율이 상승하기도 했다.

반면 2007년 17대 대선은 TV토론 역사상 최대 실패작이었다는 혹평이 나온다. 이명박 후보의 우위가 확고했던 탓에 TV토론이 이렇다할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2007년 1~2차 두 차례의 TV토론을 마친 후 ‘TV토론을 보았다’는 답은 49.6%에 불과했다.

공식 시청률에서도 2007년 TV토론은 21.7%를 기록해 1997년(53.2%)이나 2002년(34.2%)보다 훨씬 낮았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