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상품 투자하려는 만 65세 이상 고령자…"하루만 더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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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고령자 대상 ELS 판매 보호 방안 발표
숙려기간 의무화…자녀와 상담 기회도 넓혀
숙려기간 의무화…자녀와 상담 기회도 넓혀
펀드가입 경험이 전혀 없었던 70대 김모씨는 2007년 한 은행에서 ‘아시아대표지수 파생상품 투자신탁’이라는 주가연계증권(ELS) 펀드에 3억원을 들었다. 몇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2년 뒤 만기가 돌아올 때 16%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직원을 말을 듣고서였다. 김씨는 은행 직원의 말을 믿고 투자에 나섰지만 2년 뒤 이익은커녕 원금의 34%를 잃고 말았다.
이 펀드는 투자기간 2년 동안 코스피200지수와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모두 기준지수의 30%를 초과해 하락하지 않을 때만 16%의 수익률로 상환하는 상품이었다. 둘 중 하나라도 기준지수의 30%를 넘겨서 떨어지면 수익률이 크게 하락하고 심지어 원금 손실까지 볼 수 있다. 결국 닛케이지수가 34% 하락하면서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판매직원이 주요 사항을 대필하고 투자경험이 전혀 없었던 고령자에게 고도의 위험성을 수반한 파생 펀드를 권유해 고객 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하고 손실금액의 40%를 물어주도록 조정해 줬다.
김씨는 손해를 다소 보충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은퇴 이후 마땅한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바탕으로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원금마저 까먹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금융투자협회와 함께 ‘고령자를 위한 ELS 관련 상품 판매 현황 및 보호방안’을 발표했다. 김씨와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무경험 고령 투자자에 대한 금융회사의 무리한 투자상품 판매를 억제하고 고령자가 스스로에게 적합한 금융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넓혀주겠다는 취지다.
금감원에 따르면 금융회사가 파생관련 상품에 투자경험이 없는 만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에 대해 상품을 팔 때는 영업점장이 직접 확인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ELS 관련 상품에 처음 투자하는 고령 투자자에 대해서는 상담 이후 하루 이상 숙려기간을 가진 뒤에야 상품가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만 80세 이상 초고령자가 ELS에 투자할 때는 독자적인 투자 판단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가족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의무적으로 부여한다.
금융회사들은 ELS 관련 상품이 조건불충족으로 조기상환일이 경과하거나 손실발생 가능성이 높아진 경우 고령자에 대해서는 통화와 면담을 통해 알려야 한다. 판매직원에 대해 실시하는 금융회사 자체교육, 협회의 보수교육 및 자격시험에서도 고령자에 대한 금융서비스 제공시 준수사항을 반영해야 한다. 이외에도 기존 노인대상 금융교육에 금융사기예방, 은퇴설계, 금융상품 교육 등을 포함해 고령자의 금융지식을 향상키로 했다.
고령자에 대한 투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책이 나온 것은 파생상품 관련 투자경험이 없거나 1년 미만인 고령자가 전체의 34.4%에 달해 어느 계층보다 피해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고령자들이 상품을 구입한 금융회사는 권역별로 은행이 41.8%로 높고 증권은 26.9%였다. 은행 비중이 높은 것은 고령자들이 은행에서 판다는 이유에서 안전상품으로 오인했던 영향도 크다는 진단이다.
고령자들의 투자금액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금융회사의 ELS 관련상품 판매액은 총 24조4000억원이며 이 가운데 65세 이상자에 대한 판매규모는 4조2000억원으로 전체 판매액의 17.1%에 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로 은행권 이자수익이 예전만 못해 ELS 관련 금융상품 판매가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위험요인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고령자들은 금융지식이 상대적으로 낮고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금융투자협회의 ‘표준 투자권유 준칙’을 개선하고 내년 1분기 중에 각 금융회사가 내규 및 전산시스템 교체 작업을 거쳐 시행토록 지도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또 내년에는 금융회사에 대한 정기검사, 테마검사 등을 통해 고령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투자상품 판매의 적정성을 중점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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