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묻는 조건 없이 대국민 사과후 곧바로 퇴장
29년 검사생활 마감, 역대 11번째 중도퇴진 총수


한상대(53·사법연수원 13기) 검찰총장이 30일 사퇴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 총장의 사의를 수용해 즉시 사표를 수리했다.

한 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파문으로 중도 퇴임한 전임 김준규 총장의 뒤를 이어 검찰총장직에 취임한 지 477일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한 총장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15층 회의실에서 사퇴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약 1분간 짧은 사퇴의 변을 밝힌 후 곧바로 퇴청했다.

기자회견장에는 대검 대변인과 기획과장, 운영지원과장만 배석했으며 검사장급 대검 간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한 총장은 사퇴발표 전에 법무부를 통해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는 오늘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합니다"라며 말문을 연 한 총장은 "최근 검찰에서 부장검사 억대 뇌물 사건과 피의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한 차마 말씀드리기조차 부끄러운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실망 드린 것에 대하여 검찰총장으로서 고개 숙여 사죄를 드립니다"라고 말하고 단상에서 나와 허리를 숙였다.

전날 밝힌 것과 달리 청와대에 신임을 묻겠다는 문구는 없었다.

'조건 없는' 사의 표명이었다.

최근 잇따라 터진 사상 초유의 검사 비리에 대한 검찰 총수의 대국민 사과는 예정대로 포함됐다.

한 총장은 "이제 검찰을 떠납니다. 떠나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검찰 개혁을 포함한 모든 현안을 후임자에게 맡기고 표표히 여러분과 작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며 사퇴의 변을 마무리했다.

한 총장은 애초 이날 오후 2시 검찰 개혁안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신임을 묻기 위해'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물러날 총장이 개혁안을 발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내부 반발이 이어지고 '조건부 사퇴'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자 개혁안 발표를 취소하고 조건없는 사퇴로 뜻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을 마친 한 총장은 잠시 대검청사 8층 집무실에 들렀다가 1층으로 내려가 현관 앞에 모인 채동욱 대검 차장을 비롯한 검사장급 대검 간부들과 마주했다.

한 총장은 중수부 존폐를 두고 자신과 정면으로 대립한 최재경 중수부장을 비롯해 전날 자신에게 용퇴를 건의한 채동욱 대검 차장 및 나머지 대검 간부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대검 청사를 나섰다.

앞서 이날 오전 7시40분 출근한 한 총장은 9시부터 대검 부장, 기획관, 과장, 연구관 순서로 직원들과 퇴임 인사를 했다.

이로써 한 총장은 29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역대 11번째로 중도 퇴진한 검찰 총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검찰은 후임 총장이 임명될 때까지 채동욱 대검 차장의 직무대행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이 후임 총장을 임명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총장 직무대행제제는 새 정부가 후임 총장을 임명할 때까지 최소 4개월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대검 간부들은 한 총장이 물러간 후 "대검 간부 일동은 최근 검찰 내부의 혼란으로 국민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자숙하고 또 자숙하면서 뼈저린 반성을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문을 내놨다.

이와 별도로 최재경 중수부장은 출근길에 "여러모로 송구하고 감찰문제가 종결되는 대로 공직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라며 퇴진 의사를 내비쳤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kind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