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운노조가 100년 이상 독점해온 항만 하역 관련 노무공급권을 부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와 폐쇄적인 항만하역 업무 시스템 전반에 변화가 예상된다.

울산지방법원은 23일 항만 하역사인 태영GLS가 울산항운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출입금지·출입통행방해금지 본안 소송 판결문을 통해 “항운노조가 직업안정법에 근거해 노무공급권이 있더라도 항만운송과 관련해 독점적으로 근로자를 공급할 수 있다는 의미의 노무공급 독점권이 부여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항운노조의 노무공급 독점권에 대해 간접적 또는 포괄적 의미에서 부당하다는 판결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항운노조의 노무독점 공급권을 직접 거론하며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항운노조 독점권 인정 어렵다”

태영GLS는 울산신항 남항에 지난해 12월 순수 민간자본으로 부두를 건설한 후 자체 인력으로 항만 하역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울산 항운노조가 노무공급 독점권을 들어 부두 입구를 봉쇄하고 차량 진출입을 저지하자 지난 4월 법원에 소송을 냈다. 태영에 따르면 노조가 부두 입구를 봉쇄하며 차량 진출입을 막아서는 등 업무를 방해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근 1년여 동안 항만하역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해 26억원의 순적자를 냈다. 1945년 이후 노무공급권을 독점해온 항운노조는 전국 항만에 18개 노조, 소속 근로자 1만5800여명을 두고 있다.

울산지법은 울산항운노조의 독점적 노무공급권을 부인한 뒤 “원고(태영GLS)와 피고(울산항운노조) 사이에 어떠한 노무공급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 원고가 근로자를 고용해 항만하역작업 등을 하는 것에 대해 피고가 근로자공급권 침해 또는 생존권 위협 등을 내세워 업무방해 등 불법행위를 하는 것은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대구지법 행정부는 ‘포항항운노조’(새 노조)가 대구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을 상대로 “근로자공급사업 신규 허가신청 불허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피고가 근로자공급사업 신청을 불허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위법”이라고 판결 취지를 밝혔다. 경북항운노조(기존 노조)가 갖고 있던 독점적인 근로자 공급권을 부정하면서 복수노조에도 이를 허용하는 판례였다.

○항만하역업무 대수술 불가피

법원이 직·간접적으로 항운노조의 노무공급 독점권에 대해 부정하는 판결을 잇따라 내림에 따라 노조가 지배해온 항만하역업무 전반에도 대수술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울산항운노조는 이번 법원 판결에 불복 즉각 항소한다고 맞섰다. 노조가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데는 태영GLS 부두가 전국 최초의 민자부두로 여기서 한발짝 물러설 경우 자칫 전국 항만하역 업무 전반으로까지 노무독점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지난 4월 태영 GLS 측이 모 해운회사의 펄프 9900여t을 하역하려는 데 맞서 항운노조가 노조원들을 투입해 해상에서 무력시위를 벌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일부 하역업계에서는 “폐쇄적인 항만하역업무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전면 개방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정한 태영GLS 민자부두 상무는 “항운노조와 갈등을 빚으면서 해외 선사와 화주들도 부두 사용을 기피하고 있다”며 “월 3억원씩 적자를 보고 있어 이대로 가면 폐업이 불가피하다”고 정부의 조속한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