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자산가인 이른바 ‘슈퍼리치’들 사이에 미국 경기회복에 ‘베팅’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재정절벽 이슈가 불거지면서 글로벌 증시가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고는 있지만, 미국 실물경기는 바닥을 쳤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최근 글로벌리츠펀드와 유가 파생결합증권(DLS), 미국 주택 관련 주식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분위기다.

○글로벌리츠펀드 증가세 전환

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자금이 빠져나가던 글로벌리츠펀드는 이달 들어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말 3629억원이었던 글로벌리츠펀드 설정액은 올 들어서도 매달 감소해 9월 말 2899억원까지 줄었다. 하지만 이달 16일까지는 2905억원으로 소폭이나마 증가했다.

글로벌리츠펀드는 미국 부동산에 대한 투자비중이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부동산값이 급락하면서 수익률도 추락했다. 그러다 보니 환매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새로 유입되는 돈이 늘면서 환매수요를 앞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 뱅킹(PB)센터장은 “거액 투자자 중 글로벌리츠펀드에 관심을 보이는 고객이 최근 늘어 상품설명회를 열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된 10개 글로벌리츠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지난 16일 기준)은 18.81%로, 국내주식형펀드 평균(1.37%)을 크게 앞선다.

박준우 한화자산운용 글로벌운용2팀장은 “최근 발표되는 미국 주택지표를 보면 주택경기가 바닥을 친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며 “그러다 보니 글로벌리츠펀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 착공 실적은 89만4000채(연환산 기준)로 9월보다 3.6% 늘면서 2008년 7월 이후 5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시장 예측치(84만채)보다 5만채 이상 많은 수치다.

○유가 DLS 발행도 늘어

거액 자산가들의 요청에 따라 사모시장에서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DLS 발행도 늘어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등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해 가입시점보다 유가가 50% 이하로 하락하지 않으면 연 7~8%의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상품들이 주를 이룬다.

슈퍼리치들은 미국 경기회복에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요인이 겹치면서 WTI 가격이 배럴당 90달러에 가까워져 손실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조재영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강남센터 부장은 “1~2개월 전부터 고객들의 요청으로 사모 유가 DLS를 매주 100억원 정도씩 발행하고 있는데, 발행할 때마다 110억~120억원 정도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는 건설주나 유가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직접투자하는 슈퍼리치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유학경험 등을 바탕으로 미국 주식 직접투자에 익숙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민성현 삼성증권 해외주식팀 과장은 “9월 중순부터 레나 KB홈 톨브라더스 등 미국 건설주에 대한 매입주문이 들어오고 있다”며 “그동안 해외주식 투자가 애플 등 정보기술(IT)주 또는 대형 은행주를 중심으로 이뤄져왔던 것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송종현/조귀동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