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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데스크] '금융위(上)'와 '금갑(甲)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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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연 증권부 차장 yooby@hankyung.com
    해외 생활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한국 기업의 서비스 수준이 일류라는 사실을. 한국에서 일반적인 애프터서비스 당일 출장, 24시간 콜센터 등은 다른 나라에서 흔히 즐길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다. 한국 회사 중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많은 배경에는 고객 만족을 위한 기업들의 서비스 정신이 깔려 있다.

    한국의 행정서비스 수준은 그렇지 않다. 최근 벌어진 ‘두산 영구채 논란’은 그 수준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다. 논란은 두산인프라코어가 5억달러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 금융위원회가 ‘영구채를 자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촉발됐다.

    영구채 발행을 주관한 산업은행은 “관계당국이 자본으로 인정해 영구채를 발행했다”며 “자본 인정 여부가 다시 논의에 부쳐지는 것에 대해 당혹감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당혹감이 이 정도면 발행사인 두산인프라코어의 충격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금융당국의 '고객무시 서비스'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2월부터 영구채 발행을 준비했다. 지난 4월 상법 개정으로 일반 기업에도 영구채 발행이 허용되자 로펌과 회계법인의 자문을 받아 본격적인 발행작업을 했다. 중도에 우여곡절도 있었다. 당초 7월에 발행하려고 했지만, 영구채를 자본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를 놓고 시장에서 논란이 일었다.

    두 달을 기다린 끝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국제회계기준(IFRS)상 자본으로 인정된다”는 유권해석을 받아냈다. 당초 목표보다 낮은 금리 수준에 성공적으로 영구채를 발행,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의 갑작스런 제동으로 부채비율을 낮추려는 두산인프라코어의 계획은 무산 위기에 처했다.

    지난 4월 상법 개정 이후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뒷짐을 지고 있다가 회사가 영구채를 발행하고 난 뒤 뒤늦게 문제를 삼는 금융위의 대응자세를 시장은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금감원이 잠정 결론을 낸 사안을 금융위가 뒤집고 나선 배경엔 금융위와 금감원의 오랜 ‘앙금’이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기업이 고객에게 이런 ‘뒷북’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그 회사는 도태됐을 것이다. 경쟁상대가 없는 독점 행정이기 때문에 이런 ‘고객 무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생존하고 있다.

    '금융위'에서 '금융아래'로

    금융위가 금융시장의 ‘위(上)’에서 군림한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시장에서 부르는 금감원의 또다른 이름은 ‘금갑(甲)원’이다. 시장의 갑 위치에 서 있다는 뜻이다. 금융당국이 이런 식이라면 금융시장의 발전은 요원하다. 금융위는 ‘금융아래(下)’로, 금감원은 ‘금을(乙)원’으로 스스로 내려와 고객들에게 서비스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대통령 선거철을 맞아 차기 정부의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후보들마다 금융위를 금융부로 승격(박근혜 후보)한다거나, 금융위를 폐지(안철수 후보)하겠다는 내용의 개편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감독체제는 큰 변화를 겪었다. 체제는 바뀌었지만 금융당국의 군림하는 자세에는 변화가 없다. 금융감독기구 개편은 당국이 기존 권위를 벗어던지고 고객만족을 위한 공공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다.

    유병연 증권부 차장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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