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호 前 금투협회장 "美 씨티은행장 뽑는데 정권 눈치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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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CEO 선출 정부개입' 쓴소리
촘촘한 금융규제…시장 논의는 완전히 배제
감독 당국엔 '슈퍼 파워' 행사할 전문가 없어
촘촘한 금융규제…시장 논의는 완전히 배제
감독 당국엔 '슈퍼 파워' 행사할 전문가 없어
“그간 가계대출을 꾸준히 늘려왔던 은행들이 과도한 가계부채를 해결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서 있습니다. 위기가 오더라도 1금융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60% 미만으로 낮아서 괜찮고 2금융만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팔짱을 끼는 식입니다. 금융인으로서 책임의식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까?”
지난 5일 오후 2시 서울대 LG경영관 309호실. 고급금융과정(ABP)을 들으러 온 국내 금융회사 임직원들을 앞에 두고 머리가 희끗한 교수가 열변을 토했다. 황건호 서울대 초빙교수(61)의 ‘한국 금융의 당면과제’를 주제로 한 강연이었다.
그는 지난 2월까지 금융투자협회장으로 일했다. 2004년부터 8년간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그가 일선에서 물러나 서울대 경영대 강단에 섰다.
강연 내용 중엔 금융감독 당국과 금융 현실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특히 금융의 자율성과 금융사의 기업적 성격을 강조해 온 그로서는 금융규제가 강화되고 관치금융이 여전한 현실에 답답함을 드러냈다.
“(종전엔) 늘 을(乙)의 입장에서 조심스러웠다”던 그는 규제 감독에 관한 직설적인 이야기를 쏟아냈다. “자유방임에 가까운 상태였던 서구 금융과 달리 우리 금융시장은 아직 촘촘한 규제 속에 있다”며 무작정 규제 강화 추세를 좇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규제로 움츠러든 시장에서 ‘축소 균형’을 추구할 게 아니라 시장 참가자들의 자율성을 인정, 파이를 늘려서 ‘확대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어 “우리 감독 당국에 시장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되돌아보라”며 “촘촘한 규제를 만들어 슈퍼 파워를 행사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대체 누구냐”고 했다. 이어 “왜 규제 이야기를 정치인·관료·학자들이 독점하는지 알 수 없다”며 “시장에서의 논의를 완전히 배제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비판했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결정 과정에서 정부가 ‘낙점’이나 ‘승인’의 형태로 개입하는 데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미국에서 씨티은행장을 뽑는 데 정권의 눈치를 보던가요? 정부가 관여해 뽑은 CEO는 눈치를 봐야 하고 단기 업적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의 입김이 작용해 금융사 CEO가 선임되는 현상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는 “민간에 투명하게 열어두고 공개 경쟁을 하게 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금융 소비자보호라는 큰 흐름은 바람직하지만,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데 대한 경계심은 강력했다. 금융의 ‘공공성’이 강조되다 ‘기업성’을 놓치면 본질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소나기가 심하니까 비를 피해 가자는 식으로 반시장적인, 포퓰리즘적인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자부심이 없는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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