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 폐지에 찬성하십니까.’ 지난달 말 경찰청이 내부 이메일망을 통해 전국 경찰에 보낸 설문내용이다.

지난달 14일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가 경찰 신뢰 회복을 위한 개혁안의 하나로 ‘경찰대 폐지론’을 꺼낸 바로 뒤였다. 3만명 규모 전·현직 경찰관들의 친목모임인 대한민국 무궁화클럽이 경찰대 폐지를 주장하며 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던 시점이다. 1주일간 이어진 설문은 전국 10만 경찰과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 시민 1000명이 대상이었다. 경찰청은 2일 설문결과를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대 폐지론이 경찰 내부와 정치권에서 동시에 불거지고 있다.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경찰대 출신의 요직 차지가 늘면서 자칫 경찰조직 전체 사기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1%의 인력이 총경 이상 고위간부직 40%를 차지하는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경찰대 출신들은 이런 기류에 대해 검찰의 경찰 흔들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경찰대 출신들은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과 이 위원회 산하 클린정치위원회의 남기춘 위원장이 검찰 출신인 점을 이유로 들어 ‘눈엣가시인 경찰대 출신을 견제하려 한다’며 개혁안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일선 순경 출신 간부의 상당수는 오히려 경찰대 유용론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김기용 경찰청장이 지난달 15일 “경찰대에 여러 공과(功過)가 있지만 공이 훨씬 크다”며 “경찰대에 문제가 있다면 보완하고 개선해나가야지 폐지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무관 절반 경찰대, 청장은 고시 출신 독무대

경찰대는 1980년 경찰 초급 간부 육성을 위해 설립됐다. 경찰대 졸업생(1~28기) 3234명 가운데 현직에 남아있는 경찰은 1338명. 전체 경찰 인원 10만2834명 가운데 약 1.3%를 차지한다.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경찰대 출신들은 고위직을 장악하고 있다. 경찰대 출신은 졸업 후 바로 경위로 임용된다. 지난 8월 말 기준 경찰 내 총경(경찰서장급) 이상 간부 577명 가운데 경찰대 출신은 42%(242명)로 간부후보생(184명)과 고시 특채(21명)보다 많다.

“경찰 인원의 1%밖에 안되는 경찰대 출신들이 총경 이상 간부의 40%를 차지한다”(순경 출신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찰 본청과 지방청의 기획 부문은 대부분 경찰대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경찰대 출신들이 경찰을 움직인다”는 말도 나온다.

일선서 서장급인 총경 이상 간부로 올라가면 경찰대 출신의 독식은 더욱 두드러진다. ‘경찰의 별’로 불리는 경무관은 전체 40명. 이 가운데 경찰대 출신은 21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직급인 5명의 치안정감 가운데도 경찰대 출신은 2명(40%)이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외시 15기)도 지난해 11월 “경찰대 출신만으로 지휘부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반면 경찰 전체 인원의 96%(9만8604명)를 차지하는 순경 공채 출신 가운데 경무관 이상 간부는 단 3명에 불과하다. 순경 공채 출신의 한 일선서 형사팀장은 “요즘은 명문대 출신도 경찰에 많이 들어오고, 상당한 학식도 갖추고 있다”며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 형사들이 수사 경험도 없는 ‘반장’을 모시고, (경찰대 출신들이) 승진까지 쉽게 하면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남서 경찰대 출신 39명, 노원서는 고작 4명

경찰대 출신은 동문들끼리 결속력이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 때부터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니 그들만의 ‘끈끈한 동지애’가 형성돼 있다는 것. 순경 출신 일선서 형사과장은 “선배들이 끌어 주면서 승진에 유리한 경찰서 요직엔 거의 경찰대 출신들이 눌러 앉는다”며 인사 쏠림 현상을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 경찰팀이 서울 관내 경찰서의 경찰대 출신 비율을 조사한 결과 굵직굵직한 강력사건이 많아 공적을 쌓아 승진에 유리한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나 청와대, 정부청사를 관할하는 종로경찰서 등의 요직에는 경찰대 출신이 많이 몰려 있었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대 출신은 39명으로 전체 근무인원(700명)의 5.57%였다. 서초경찰서와 수서경찰서에 각각 21명과 14명이 배치되는 등 경찰대 출신 비율이 다른 경찰서보다 현저히 높았다. 반면 사건이 상대적으로 뜸한 강북지역 노원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대 출신은 4명으로 전체 인원(734명)의 0.05%에 불과했다.

강북 지역의 한 경찰서에 근무한 경찰은 “지난해 경위로 승진할 기회가 있어 기대했지만 경찰서에 경위 승진 인원이 배당되지 않아 승진은 꿈도 꿀 수 없었다”며 “사건도 없고, 힘도 없는 경찰서장 밑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의 서러움이라고 여긴다”고 털어놨다. 강원도 동해나 전라북도 남원 등지에서는 경찰대 출신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개인 능력차를 인정하더라도 경찰대 출신의 승진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08년 552명의 총경 이상 간부 가운데 경찰대 출신은 137명으로 전체의 24%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8월 인사 당시에는 42%로 18%포인트 높아졌다. 경무관 승진 인사에서 최근 3년간 경찰대 출신은 2010년 50%, 지난해 44%, 올해 56%로 평균 50%다. 그러나 경찰대 출신 서울지방경찰청의 한 간부는 “(경찰대가 주요 보직을 독식한다는 비판 때문에) 경찰대 출신끼리 승진경쟁을 시키는 등 보이지 않게 보직을 안배하고 있다”며 “오히려 순경 출신이 마음 편하겠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경찰대 출신에게도 성역은 있다. 차관급인 경찰청장은 고시 출신의 독무대다. 11대부터 17대(현 김기용 청장)까지 14대(어청수 청장, 간부후보)를 제외하곤 모두 고시 출신이다.

◆폐지론,‘자중지란’인가 ‘정치권의 흔들기’인가

경찰대 폐지론이 처음 거론된 건 2005년. 경사 이하 일반 경찰관들의 승진 차별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 본격화했다. 하위직·비간부 출신 전·현직 경찰관 1200명이 대한민국 무궁화클럽이라는 단체를 결성한 것도 이 시기다. 이들은 경감까지 시험을 보지 않고 근속 승진할 수 있게 법을 바꿔달라는 청원서를 국회의원들에게 발송했다. 불똥은 곧바로 경찰대로 튀었다. 승진 차별의 주원인으로 경찰대가 지목됐기 때문. 급기야 당시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은 경찰대를 폐지하는 내용의 ‘경찰대학 설치법 폐지 법률안’을 발의하고 공청회 등을 열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런 목소리는 최근까지도 순경 출신들의 모임인 무궁화클럽이나 정치권을 통해 반복되고 있다.

무궁화클럽 측은 “경찰대가 파벌을 형성해 선후배끼리 밀고 끌어주니 자칫 전체 경찰의 사기 저하로 조직 전체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대 출신의 인사독식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하고 있다. 전체 조직의 단결을 저해하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인식 외에 유능한 인재가 조직 내에 수혈돼 조직 전체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창구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서울 영등포서 한 순경 출신 팀장급 간부는 “경찰대가 단순히 간부를 배출하는 곳만은 아니다. 연구와 교육에 대한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전체 경찰의 골격을 다듬는 역할을 한다”며 경찰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무궁화클럽 등 경찰 내부의 비판과 달리 정치권에서 불거져나오는 경찰대 폐지론은 대개 검찰 출신 정치인들의 의도가 깔린 ‘검찰의 경찰 흔들기’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경찰대 출신 일선서 수사과장은 “경찰대 출신을 껄끄러워하는 검찰이 경찰대 폐지를 들고 나와 경찰 조직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일반 공무원이나 군 조직도 고시 출신이나 사관학교 출신 간부들끼리 파벌을 조성해 인사를 독식하는 사례가 없지 않은데 유독 경찰대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없앤다고 개혁 이뤄지나"…전문가·정치권 갑론을박

전문가들은 경찰대 출신 때문에 생기는 조직 내의 문제는 조직 내부에서 풀어야지 경찰대를 폐지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경찰 내에서 경찰대 출신끼리 뭉치는 것에 위화감을 느낄 수 있어 개개인이 문화에 편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실무적으로는 출신을 보고 인사한다는 오해가 들지 않도록 출신 간 안배 등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무궁화클럽 측도 “인사쿼터제를 도입해 인사 독식의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도 비난이 쏟아지자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경찰대 출신으로 경찰청 차장을 지낸 박종준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은 “대만처럼 경찰대 정원을 줄이고 순경이나 경장 중에서 우수인력을 선발, 경찰대에 편입시키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 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고시 특채 출신 일선서 수사과장은 “전체 구조적으로는 미국처럼 계급정년에 상관없이 현장 근무자에게는 더 우대를 해서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관리직은 따로 뽑아 관리 쪽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일본의 시스템도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우섭/박상익/이지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