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용카드사들은 대형 가맹점 수수료 문제만 불거지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어김없이 호출을 받는다. 불려나간 카드사 임원들은 으레 금융당국의 엄포를 듣고 온다. 대형 가맹점 수수료를 지금 수준보다 반드시 높여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카드사 임원은 29일 “이런 식의 행정지도를 올 들어 수차례 받았고 전화 등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대형 가맹점 수수료 인상을 밀어붙이기 위해 사실상 담합을 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오는 12월22일 시행되는 개정 여신전문금융업법의 취지에 맞게 카드사들이 수수료를 책정하도록 하기 위한 통상적인 업무였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카드사들의 반응은 다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대외적으로는 카드사들에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수수료를 적용하라고 지도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며 “대형 가맹점과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카드업계가 수수료 수준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카드사 입장에선 업계에 담합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금융당국이 담합 권유를 포함해 카드 수수료 협상에 무리하게 개입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난 7월 롯데카드와 롯데그룹의 창고형 대형 마트인 빅마켓과 가맹점 계약 당시 모 카드사가 1% 미만의 수수료로 계약을 하려고 했지만 금융당국이 1.5% 미만으로 계약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빅마켓 가맹점 계약 입찰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세종필드골프클럽과 카드사들의 계약도 일부 카드사가 1.5%로 계약하자 2%로 올리라고 지시해 이를 관철시켰다. 금융당국은 현재 삼성카드와 코스트코가 2015년까지 수수료 0.7%로 장기 계약을 맺은 것에 대해서도 소급입법에 따른 위험성을 무릅쓰고 재계약을 통해 인상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담합 의혹을 받을 정도로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 인상에 열을 올리는 것은 개정 여전법의 영향이 크다. 금융위원회가 영세 중소가맹점에 대한 우대 수수료율을 1.5%로 정하고 대상도 연매출 2억원 이하로 정하다보니 카드사들의 건전성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우려돼 이를 만회할 방법은 대형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인상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표준약관에 따라 가맹점 수수료율 변경 한 달 전에 통보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달 22일까지 금융당국의 무리한 재계약 요구가 계속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박덕배 성균관대 교수는 “여전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금융당국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당한 압력으로 비춰질 만큼 카드사를 압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카드업계가 자율적으로 협상에 나서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