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은 20년 전만 해도 오지 중의 오지였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정선의 험산 산세를 ‘무릇 나흘 동안 길을 걸었는데도 하늘과 해를 볼 수 없었다’고 했을 정도다. 정선아리랑은 이런 정선의 자연과 정서를 쏙 빼닮았다. 구슬프고 애절한 3000여수의 정선아리랑에는 첩첩의 산자락과 그 산들 사이로 꺾이고 휘어지는 강물, 산골 생활의 고적함과 고단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우리 소리기행, 아리랑’을 주제로 정선을 비롯한 아리랑의 고장 5곳을 ‘11월의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밀양아리랑의 경남 밀양, 진도아리랑의 전남 진도, 문경새재아리랑의 경북 문경, 경기아리랑의 경기도 과천이다.

○유장하고 애절한 정선아리랑

무형의 아리랑을 찾아가는 유형의 정선여행 코스는 거칠현동, 아우라지 처녀상, 정선아리랑전수관, 아리랑극 공연장 등 어디라도 좋다. 정선읍 북실리와 귤암리 사이의 병방치 전망대에 오르면 한반도 모양의 밤섬 둘레를 동강 물줄기가 180도로 감싸안고 흐르는 비경을 만날 수 있다. U자형으로 돌출된 구조물 바닥에 강화유리를 깔아놓은 병방치 스카이워크에 서면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다.

정선아리랑은 주제에 따라 수심편, 산수편, 애정편, 처세편, 무사편, 뗏목편 등으로 분류하는데 그중 애정편의 무대가 아우라지다. 아우라지는 강원도 일대에서 벌목한 목재가 천리 물길을 따라 한양까지 운반되던 출발점. 아우라지 강기슭에 정선아리랑전수관이 있다. 아우라지를 출발해 뗏목에 목재를 싣고 가던 정선읍내 조양강과 동강은 황홀한 풍경의 연속이다.

정선5일장이 열리는 날(2·7일) 오후엔 군청 옆 문화예술회관 3층 공연장에서 극단 무연시가 공연하는 정선아리랑극 ‘어머이’도 꼭 챙겨볼 것. 정선군 종합관광안내소 1544-9053

○고개 넘으며 부르는 문경새재아리랑

문경새재는 예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다. 최근에는 걷기 여행자들이 즐겨찾는 옛길 중 한 곳으로, 가족 단위 관광객도 평이하게 걸을 수 있는 흙길이 펼쳐진다. 흙길을 맨발로 걷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을 넘어서면서부터 가을빛이 완연하다. 주흘산을 바라보며 새재를 오르다 보면 새재를 넘던 관리들이 묵어가던 조령원터를 비롯해 교귀정, ‘산불됴심비(산불조심비)’, 조곡폭포 등이 운치를 더하고, 조곡폭포를 지나면 제2관문인 조곡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곡관과 제3관문인 조령관 사이에는 문경새재 아리랑비가 서 있다. 아리랑비 옆에 있는 작은 버튼을 누르면 문경새재아리랑 곡조가 구성지게 흘러나온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대야산자연휴양림과 문경8경의 하나인 용추계곡, 신라 석성인 고모산성, 문경석탄박물관, 문경도자기전시관과 문경유교문화관 등 문경의 자연 및 문화를 체감할 곳도 많다. 문경시청 관광진흥과 (054)550-6392

○밀양인들의 삶이 담긴 밀양아리랑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아랑사또전’은 밀양에서 전해지는 ‘아랑 전설’을 원형으로 삼았다. 아랑 전설이 원형이라고 전해지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밀양아리랑이다. 밀양 사람들이 정절을 지키다 죽은 아랑 낭자를 기리며 부르던 노래가 밀양아리랑이라는 것. 밀양의 중심인 영남루(보물 제147호) 아래에는 아랑 낭자를 기리는 아랑사와 밀양아리랑 시비가 있다. 시비 옆에는 밀양아리랑을 들을 수 있는 음향 시설이 있다. ‘날 좀 보소 / 날 좀 보소 / 날 좀 보소 / 동지섣달 꽃 본 듯이 / 날 좀 보소….’

밀양아리랑은 다른 아리랑보다 매우 빠르고 흥겹다. 때문에 아랑 전설에서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라 너른 들녘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르던 농요라는 의견도 있다. 밀양아리랑은 광복군의 군가로 사용되기도 했다. 다양하게 변형된 밀양아리랑은 100여수가 전해진다. 밀양시립박물관에서 다양한 밀양아리랑과 함께 변계량 김종직 등 밀양의 학맥과 밀양 12경도, 밀양 독립운동사 등을 볼 수 있다. 가을이면 단풍과 억새로 장관을 이루는 천황산, 얼음골에 들렀다가 3대째 도예를 하는 청봉요에서 도예 및 다도체험을 해도 좋겠다. 밀양시청 문화관광과 (055)359-5644

○섬마을에 울려퍼지는 진도아리랑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 구부야 구부구부 눈물이로구나 /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엔 희망도 많다.’

진도아리랑은 섬마을 사람들의 삶을 관통한다. 기쁨도 슬픔도 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에 녹아 있다. 진도 사람들에게 아리랑을 부르는 건 일상이다. 밭일하던 할머니도, 장터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도 흥만 나면 진도아리랑을 불러 젖힌다.

국악의 고장 진도에는 아리랑을 포함해 국악을 보고 배우며 즐길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국립남도국악원, 진도향토문화회관 대공연장, 운림산방, 지난해 5월 임회면 상만리에 개장한 아리랑마을 등에서 구성진 가락을 들을 수 있다.

소치 허련이 낙향해서 화방으로 사용하던 운림산방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99’로 선정한 곳이니 빼놓지 말자. 진도개사업소에서 펼쳐지는 진도개 공연과 주말 진도개 경주, 남도진성과 남진미술관, 남도 최고의 낙조를 자랑하는 세방낙조전망대에도 꼭 들러보자. 진도군청 관광문화과 (061)540-3045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