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사회, 감축 성장에 익숙한 일본인은 경기 흐름에 민감하다. 생활을 지배하는 직접 변수에서부터 간접 변화까지 두루 챙긴다. 환율 변동이 대표적이다. 관심을 갖기엔 부담스러운 주제건만 환율 흐름을 꾸준히 챙기는 이가 적지 않다.

알아야 손해가 적을 뿐더러 새로운 수익 기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는 환율 트렌드 속에서 위기 대신 기회도 낚는다. 이때 기회는 환율 상승(엔고)에 올라탄 사업 모델이다. 엔고라면 대부분 해외여행의 저가 호기란 이미지에 머물러 왔다. 다만 일각에선 엔고 환경을 새로운 수익 모델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구체적이다.

선두 주자는 해외 수입품 인터넷 쇼핑몰이다. 엔고는 수출업자에게 불리하지만 수입업자에겐 유리하다. 더 싼값에 물품을 들여오기 때문이다. 환차익이다. 환차익만큼 엔고 환원 세일을 해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고 엔고 호재만으로 거액의 자금을 들여 창업하기엔 부담스럽다. 이럴 때 쇼핑몰은 초보 창업의 단골 아이템이다. 저비용의 창업 자금 때문에 청년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환율만 활용해도 일확천금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감 덕분이다.

이는 3만8000개 점포가 입점한 최대 쇼핑몰 ‘라쿠텐(樂天) 시장’에서 확인된다. 이곳에선 신규 출점이 급증세다. 해외 브랜드를 가져와 판매하는 형태가 많다. 가령 전동드릴 세트는 일본 국내라면 3만6000엔인데 해외 사이트에서 사면 258달러에 불과하다.

‘1달러=80엔’을 적용하면 송료(4000엔)를 더해도 2만600엔이면 살 수 있다. 상당한 이득이다. 고급 브랜드는 저가 메리트의 입소문이 이미 자자하다. 구찌도 최대 80% 할인 가격에 판매된다. 환차익에 빠진 고객이면 정상 루트로는 사지 못하는 저가 메리트다. 엔고로 돈 버는 청년 쇼핑몰의 성공 사례가 등장하는 이유다.

‘라쿠텐’에는 엔고 이후 수입품 전용 쇼핑몰이 꽤 늘었다. 식기·조리기구 등 여성 취향의 수입품 판매가 특히 인기다. 오프라인 점포가 온라인에 사이트를 열기도 한다. 인력 관리 회사가 문구용품 전문 사이트를 오픈하는 등 이업종에서의 창업까지 있다.

자신의 전문 지식과 관심사를 살린 개인의 특화 쇼핑몰 오픈 수요도 많다. 웬만한 남편보다 더 잘 버는 전업주부가 흔하다. 월 1억 엔 매출 점포까지 있다. 물론 창업 초보자에겐 위험 요소가 많다. 이 때문에 라쿠텐이 성공 창업을 위해 적극 조언에 나섰다. 400명의 전문 스태프가 조언해 주는 교육·지원 시스템이다.

사진 촬영부터 홈페이지 제작·운영, 접객 방법 등을 세세히 가르친다. 지지부진한 사이트는 주력 제품 선정 노하우나 반액 세일 등 특판 이벤트를 알선하기도 한다. 라쿠텐은 아예 엔고 찬스를 노려 미국의 통판 회사마저 매수했다. ‘아메리카다이렉트’다. 미국 출품자가 내놓은 제품을 일본 소비자가 일본어로 간단히 구매하는 구조다.

‘바이마(Buyma)’란 사이트도 관심 대상이다. 65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2만5000명)을 개인 바이어로 두고 이들이 현지에서 구매한 제품을 일본 국내 회원(85만 명)에게 파는 형태다. 역시 엔고 수혜다.

일본엔 없는 한정 제품 등을 살 수 있어 활황이다. 가령 밀라노에 사는 바이어가 사진을 찍은 후 올리면 도쿄 거주자가 주문하고 이를 사 부치면 끝이다. 개인 바이어는 해당 국가에서 결혼한 전업주부나 유학생, 주재원 가족이 많다.

수수료를 받는데 엔고 덕에 수입이 짭짤하다. 주문과 동시에 구매하니 재고 위험은 제로다. 최근 통화 약세인 유럽 지역의 바이어 활동이 늘어났다. 샤넬·구찌 등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브랜드가 평균 10~30% 저렴해 입소문이 났다.

중국 시장은 인터넷 쇼핑몰에 알짜 무대다. 아시아 최대 도매시장인 ‘이우(義烏)’를 보자. 이곳엔 일용품에서부터 의류·보석·가구 등 없는 게 없다. 국내외에서 하루 20만 명의 바이어가 찾는다. 점포 6만 개에 170만 종이 거래된다. 가격은 일본의 10분의 1 혹은 그 이하다. 엔고까지 거든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