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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과학 빙자한 미신이 판치는 먹거리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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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라면 스프의 원료인 가쓰오부시(훈제건조어육)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나와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23일 처음 MBC 관련 보도가 나오자 식약청은 해당 원료가 들어간 30개 제품을 검사한 결과 벤조피렌 검출량이 0~4.7ppb로, 훈제건조어육 허용기준(10ppb 이하)보다 낮아 안전한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정감사에서 이언주 민주통합당 의원의 질타를 받자 이틀 만에 입장을 바꿔 농심 너구리 등 4개사, 9개 제품을 자진 회수하도록 명령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혼란에 빠졌고 파장이 대만 중국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벤조피렌은 화석연료나 유기물의 불완전연소 때 생성되는 일종의 환경호르몬이다. 담배연기 매연은 물론 숯불구이, 훈제식품, 볶은 견과류, 각종 식용유에서도 나온다. 유해물질이긴 하지만 자연상태에서도 존재할 수 있기에 한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아기용 분유까지 허용기준을 두어 관리할 뿐이다. 극미량도 검출돼선 안 된다는 식으로 몰아갈 일은 전혀 아니다. 문제는 여론에 춤추는 식약청이다. 해당 라면을 먹을 때 벤조피렌 노출량이 고기를 구워먹을 때 노출량의 1만6000분의 1에 불과해 매일 먹어도 문제 없다면서도 자진 회수와 시정명령을 내렸다. 여론을 등에 업고 의도적으로 업자를 두들긴다는 느낌마저 든다. 정부는 이렇게 과학을 버리고 미신의 노예가 되고 있다.

    먹거리 유해 파동들은 한결같다. 방송의 선정적 폭로, 소비자 불안 증폭, 당국의 오락가락 대응까지 달라진 게 없다. 이번에는 국회의원까지 폭로에 가세했다. 공업용 우지 라면, 쓰레기 만두, 포르말린 통조림 등 먹거리 파동은 거의 모두가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먹거리 소동의 극단적 분출이 2008년 광우병 난장판이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방송은 언제쯤 거짓과 과장을 듬뿍 풀어먹인 불량제품을 내놓지 않게 될까. 아니 언제쯤 과학을 빙자한 미신이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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